4·12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3 바이트 제거됨 ,  7년 전
편집 요약 없음
 
== 개요 ==
[[북벌 (국민당)|북벌]] 기간 중 [[1927년]], [[장제스]]의 명령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이 공격으로 공산당원의 공산혁명이 타격을 입었고 소련에 의한 [[제1차 국공합작]]의 종결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 사건을 두고 진압에 찬성한 쪽에서는 ‘공산당원의 숙청, 정화(이른바 {{zh|t=淸黨|p=qīng dǎng|h=청당}})’으로’로 '''청당'''이라 불렀고, 반대파 쪽에서는 ‘공산 혁명의 기도를 막았다’는 뜻에서 '''‘4•12 반혁명정변({{zh|s=四一二反革命政变}})’''' 또는 '''‘4•12 참안({{llang|zh|四一二慘案}})’'''으로 불렀다.
 
이 사건 이후 몇 달 동안 중국 전역에 공산당의 무장혁명에 대한 대대적인 경계와 숙청이 이뤄져 공산주의자, 좌파 당원들이 당에서 축출되었고 수배령이 내려져 많은 인사들이 체포, 투옥, 처형되었으며 당원들이 국민당으로 전향하거나 탈당하였다. 국민당의 진압에 항의했던 이들은 공산당으로 비밀 입당하거나 공산혁명을 지지하는 쪽에서 시위를 펼쳐나갔다. 이 사건으로 인해 [[천두슈]]와 더불어 대표적 공산주의자로 활동했던 [[리다자오]]가 베이징에서 처형되는 등 [[코민테른]]에 의한 혁명운동의 세력이 몇 년간 기세가 꺾이게 되었다.
익명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