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 임씨: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31번째 줄:
== 과거 급제자 ==
부안 임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6명을 배출하였다.<ref>{{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LST_183_232_0411}}</ref>
 
; 문과
임규상(林圭相) 임병두(林炳斗) 임세필(林世弼) 임원배(林原培) 임정(林頲)
임회(林薈)
 
; 무과
줄 39 ⟶ 43:
임필기(林必崎) 임필성(林必成) 임필영(林必英) 임하위(林夏葳) 임해운(林海雲)
임홍일(林弘一)
 
; 문과
임규상(林圭相) 임병두(林炳斗) 임세필(林世弼) 임원배(林原培) 임정(林頲)
임회(林薈)
 
; 생원시
65번째 줄:
== 문화재 ==
* [[나성 독락정]] : 세종특별자치시 나성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누정. 세종특별자치시 문화재자료 제8호.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건물. 금강 옆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려 말의 전서(典書) 임난수(林蘭秀)가 조선왕조의 역성혁명에 반대하여 금강변 월봉 아래 은거하여 고려 왕조에 대한 회상을 하면서 생활하던 곳이다. 임난수가 죽은 뒤 양양도호부사 임목(林穆)이 독락정을 건축하여 선인의 얼을 기념하여오던 중 1422년(세종 4)에 비석을 건립하였다. 1710년(숙종 36) 기호서사(岐湖書舍)가 창건되어 임난수·임목을 향사하였다.<ref>[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43846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나성 독락정]</ref>
 
== 인구 ==
*1985년 11,543가구, 48,043명
*2000년 19,537가구, 63,589명
 
== 주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