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 유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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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0년]] 수르야바르만이 죽자, 왕국은 내전의 풍화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 기회를 틈타 지금의 베트남 남부에 있던 [[참파]]가 [[1177년]] [[메콩 강]]과 [[똔레삽 호수]]를 타고 수로로 침공을 하였다. 참파는 크메르의 수도인 야소다라푸라를 약탈하고, 왕을 죽이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나중에 [[자야바르만 7세]]가 되는 크메르의 왕자는 가신들을 거느리고 호수와 육지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참족을 물리친다. [[1181년]] 자야바르만은 왕좌에 등극하고, [[앙코르 왕조]]의 가장 위대한 왕이 되었다. 폐허가 된 야소다라푸라에 자야바르만은 성벽도시인 [[앙코르 톰]]과 [[바이욘]] 사원을 건설한다. 바이욘 사원의 석벽 부조는 참족과 왕의 전투 장면뿐만 아니라 부근의 촌락민들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
 
자야바르만 때는 [[타 프롬]]과 [[프레아 칸]]과 같은 사원이 건설하여, 그의 부모에게 바친다. 이 대형 공사로 인해 국가의 종교는 [[힌두교]]에서 [[대승 불교]]로 바뀌게 된다. 자야바르만 자신이 불교 신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자야바르만 7세의 통치기간 동안 [[힌두교]] 사원은 모두 부처로 상을 모셔두게 된다. 그리하여 [[앙코르 왓]]도와트도 불교 사원이 된다. 그의 사후에 힌두교는 다시 부활하게 되고, 14세기에 소승 불교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 불상을 훼손하는 대규모의 운동이 벌어진다.
 
== 중국 사신 주달관의 진랍풍토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