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철 (조선귀족):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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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인 김보현이 [[명성황후]]의 [[여흥 민씨]] 집권 아래 고위직을 역임하여 그도 요직에 임명되었다. 김보현은 [[선혜청]] 당상을 거쳐 [[경기도]] 관찰사로 근무하다가 [[1882년]] [[임오군란]] 때 분노한 구식 군인들에게 현직 선혜청 당상 [[민겸호]]와 함께 피살되었다.
 
김영철은 [[성균관]] 대사성, 이조참판 등을 거쳤다. 민씨 세력의 신임을 받아 [[1886년]] [[형조판서]]를 시작으로 판서 벼슬을 두루 역임했고, [[1902년]] [[시종원경]]이 되었다.
 
[[1910년]] 70세 이상의 퇴임 관리를 위한 [[기로소]]에 들어갔으며, 그해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되면서 합방에 협조한 원로 관료로서 일본 정부로부터 남작의 작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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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07년도 조사보고서 II - 친일반민족행위결정이유서
|꺾쇠표=예
|발행년도연도=2007
|발행월=12
|id=발간등록번호 11-1560010-00000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