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 (1917년 12월):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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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 직후 ===
[[파일:Kim Jeong Il and Kim Jeong Sook 1948.jpg|thumb|right|230px|아들 [[김정일]], 딸 [[김경희]] 등과 함께 강원도 화진포에서 ([[1948년]] [[8월 7일]])<br>맨 뒷줄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김정숙, 가운뎃 줄 첫번째가 아들 [[김정일]], 세번째가 딸 [[김경희]]]]
[[1945년]] [[8월 15일]]에 일제가 패망하자 남편 [[김일성]]과 함께 평양으로 귀환했고, 이듬 해인 [[1946년]] 5월에 딸 [[김경희 (정치인)|김경희]]를 낳았다. [[1947년]] 여름에 둘째 [[김만일]]이 김일성 관저 연못에 빠져 사망하였다.
 
[[1948년]] [[3월]] 연극《백두산》시연회를 참관하였다. [[1948년]] [[9월]] [[김일성]]이 내각 수상이 된 후, 중앙여맹위원장 사업에 추천받았으나 사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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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후 ===
[[파일:Pyongyang Revolutionary Martyrs Cemetery - statue 7.jpg|thumb|right|200px|평양 대성산혁명열사릉에 전시된 김정숙의 흉상]]
묘지는 [[대성산혁명열사릉]]에 안장되어 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prometheus.co.kr/articles/120/20060813/20060813190300.html|제목=북한의 열사릉, 그 상징과 폭력 : 혁명열사릉과 애국열사릉|출판사=프로메테우스|저자=차문석|작성일자날짜=2006-08-13|확인일자=2008-06-28}}</ref> 김정숙은 해방 후 공식적인 직책을 맡은 적은 없으나, 사후 장군으로 추존되어 '백두여장군', '김정숙 여장군님' 등의 존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양강도]]에는 그의 이름을 딴 [[김정숙군]]과 [[김정숙읍]]이 신설되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는 그의 항일투쟁과 해방 후 새 조국건설사업에 남긴 업적이 높다며 《3대장군》중 한명으로 받들었다. [[함경북도]] [[회령시]]와 [[양강도]] [[김정숙군]] [[김정숙읍]] 등지에 동상이 있고, 혁명열사릉에 흉상이 있으며, [[조선인민군]] 해군간부를 양성하는 초급 대학 중 그의 이름을 딴 [[김정숙해군대학]]이 있다.
 
== 연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