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기원: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잔글 →‎단기폐지 논란: 변수 이름 수정 using AWB
Namobot (토론 | 기여)
인용 틀 변수 이름 수정
2번째 줄:
 
== 역사 ==
단군과 단군기원의 연대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유사]]》이다. [[일연]]은 이 책에서 “[[단군왕검]]은 [[요임금]]이 즉위한 지 50년인 경인년에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불렀다.”라고 하였다. 또한 그곳에 주석을 달아 “[[요임금]] 즉위 원년은 무진년이니 즉위 50년은 정사년이지 경인년이 아니다.”라고 주석을 달았다. 이에 따르면 단군기원인 정사년은 ([[기원전 2284년]])이다.<ref> {{서적 인용
| 저자=박은봉
| 제목=한국사 상식 바로잡기
| 꺾쇠표=예
| 발행일자날짜=2007-11-24
| 판=초판 1쇄
| 출판사=책과함께
| 출판위치=서울
| id=ISBN 978-89-91221-31-4
| 쪽= 285~286쪽 }} </ref>
 
[[이승휴]](李承休)가 지은 《[[제왕운기]]》 동국군왕개국연대(東國君王開國年代)에는 [[제석천]](帝釋天, [[옥황상제]])의 손자 [[단군]]이 제고(帝高)와 같은 무진년에 즉위하여 은(殷)나라 무정(武丁) 8년 을미에 아사달산에 들어가 신(神)이 되었는데, 그 동안 나라를 다스린 기간이 1,028년이라 했으며, 그 뒤 164년이 되는 주(周)나라의 호왕(虎王, 武王) 원년 기묘에 [[기자 (고조선)|기자]](箕子)가 [[조선]]으로 도망 와서 나라를 세웠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이승휴의 연대 기록은 당시의 전근대 역사학의 기준으로도 오류가 있는데, [[주나라]] 무왕 원년으로 전근대 역사학에서 공인되어 있던 기묘년([[기원전 1122년]])을 중심으로 계산하면 《제왕운기》에서 단군이 즉위한 해는 [[기원전 2313년]]이 되며 이 해는 무진년이 아니다. 대체로 학계에서는 1,028년을 1,048년의 오기로 보며, 이렇게 보정하면 무진년([[기원전 2333년]])이 된다.
28번째 줄:
 
== 단기폐지 논란 ==
단기연호 병용은 [[1948년]] [[9월 12일]] [[대한민국 국회|국회]] 133명의 재석의원 중 106명의 찬성을 얻어 '연호에 관한 법률'을 의결하고 이어 단군기원(檀君紀元)을 연호로 하는 '법률 제4호'로 공포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5.16 군사정부가 [[1961년]] [[12월 2일]]부 법률 제775호 '연호에 관한 법률'에서 "대한민국의 연호는 서력기원으로 한다"고 해 단군기원이 폐지되고 서력기원이 채택됐다.
 
하지만 [[국회의원]] 일부에서 단기연호를 병용하자고 나서고 있다. 이들은 서기를 포기하고 단기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많이 쓰고 있는 서기와 함께 우리의 주체성을 함께 살리는 단기를 병용하자는 것이고 분단된 남북의 동질성 회복과 민족 통일을 위해서도 개천절의 의미는 다시금 조명돼야 하며 단기 연호 병용은 반드시 부활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법제처]]는 [[2012년]] [[7월 8일]] "[[대한민국]]의 공용연호는 서기이며 단기를 함께 쓸 경우 불기(佛紀), 공기(孔紀)도 문제되므로 혼란이 커질 것"이라며 단기연호를 공용연호로 쓸 수 없음을 발표한 바 있다. <ref>{{뉴스 인용|url=http://view.asiae.co.kr/news/view.htm?idxno=2012100315091799935&nvr=Y|제목=정치권, 개천절맞아 "홍익인간 정신 받들어 대선승리"|성=|이름=정치경제부 이경호 기자|일자=2012-10-03|출판사=아시아경제|확인일자=2013-01-25}}</ref>
 
== 같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