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공: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새 문서: thumb|250px|증공·『만소당화전』'''증공(증공)'''(1019년-1083년)은 북송의 산문가. 자는 子固(자고), 시호는 文定(... |
편집 요약 없음 |
||
1번째 줄:
[[Image:Zeng Gong.jpg|thumb|250px|증공·『만소당화전』]]'''증공(증공)'''([[1019년]]-[[1083년]])은 [[북송]]의 산문가. 자는 子固(자고), 시호는 文定(문정). 建昌(건창) 南豊(남풍)에서 출생. 왕안석(
== 략전 ==
建昌(건창) 南豊(남풍)[
먼 혈통의 인척 관계에 있는 [[왕안석]]과는 [[1041년]]경에 직접 알게 된 이후 평생에 걸쳐 친하게 사귀었다. 동생인 曾布(증포)는 新法黨(신법당)의 유력한 일원이었지만, 증공 자신은 新法(신법)을 비판하는 태도를 보였다. 왕안석에게 간절한 편지를 직접 송부해 그 반성을 재촉하기도 한다. 수수한 인품이 이유의 하나가 되어 官界(관계)에는 그다지 출세하지 못했고 그 산문도 화려는 부족하지만, 끈기 있고 결실한 의론(議論)의 전개가 특징으로, [[청나라|청]] 대 桐城派(동성파)의 고문가(古文家)인 姚鼐(요내)는 “증공(曾公)은 능히 그 단점으로 하는 곳을 피해 어기지 않는다”라고 평한다. 南豐七曾(남풍칠증)의 일원이자 [[당송팔대가]]의 일원, 서발(序跋)ㆍ잡기(雑記) 류에 우수한 것이 많고 고대 서적 정리ㆍ교감에 종사하던 시기의 작품인 『戰國策目錄序(전국책목록서)』가 유명하다. 시문집에 『元豊類藁(원풍류고)』 50권ㆍ『續元豊類藁(속원풍류고)』 40권ㆍ『隆平集(융평집)』 30권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