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표도로브나 (1847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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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결국 혁명이 터져 아들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니콜라이 2세]]가 퇴위한 뒤, [[키예프]](Kiev)에서 [[적십자]] 활동을 시작한 마리아 표도로브나는 [[1918년]] 다른 로마노프 일원들과 함께 머무르고 있던 [[크림 반도]]에서 장남 일가의 몰살 소식을 전해들었다. 공황 상태에 빠진 그녀는 결코 그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고, 한창 러시아 혁명이 진행되는 극도로 위험한 와중에서도 절대 러시아 땅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주변으로부터 설득당한 그녀는 언니이자 영국 황태후인 [[덴마크의 알렉산드라|알렉산드라]]와 그녀의 아들 [[영국의 조지 5세|조지 5세]]가 보내준 군함 HMS 말버러(HMS Marlborough)를 타고 [[1919년]] 러시아를 떠나 영국에 머물렀고, 이후 고향 [[덴마크]]에 정착하여 [[1928년]] 사망하였다. 마리아 표도로브나는 마지막 유언으로 자신의 유해를 [[러시아]]에 보내 남편의 곁에 묻어달라고 하였으나 이 유언은 사후 78년 뒤인 [[2006년]]에서야 비로소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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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표도로브나는 평생 [[니콜라이 2세]] 일가가 처형당했다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고 그들의 죽음을 상기시키는 말이나 행동을 질색하였다. 이러한 황태후의 믿음을 이용하여 이미 그녀의 생전부터 자신을 러시아 마지막 황제의 일가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종종 나타났는데, 그중에서도 넷째 황녀인 [[아나스타샤 니콜라예브나 로마노바|아나스타샤 여대공]]을 사칭한 [[
== 자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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