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치 죄르지: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Mersenbot (토론 | 기여)
편집 요약 없음
4번째 줄:
 
== 삶 ==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헝가리계 유대인 은행 중역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뢰빙게르 죄르지 베르나트'''({{llang|hu|Löwinger György Bernát}})이다. 부다페스트, 베를린,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철학과 문학을 배우고 [[게오르크 지멜|지멜]]과 [[막스 베버]]의 영향을 받았다. 자유극장(自由劇場) 운동에 참가하여 [[1909년]]에 《현대 드라마 발전사》를 저술했으나, [[제1차 세계 대전]] 무렵부터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헤겔]]의 객관적 관념론에 접근하는 동시에 헝가리의 [[생디칼리즘|생디칼리스트]]인 에르빈서보 사보의에르빈의 영향을 받았다. [[1918년]]의 [[독일 11월 혁명|독일 혁명]] 직후 헝가리 공산당에 입당하고, [[1919년]]의 헝가리 혁명에 참가하여 혁명정부의 문교부장관이 되었다. 혁명이 실패하자 [[빈]]으로 망명하여, 《역사와 계급의식》(1923), 《레닌》(1924)을 써서 혁명이 좌절한 이유와 마르크스 주의의 주체성(主體性) 문제를 추구했다. [[1929년]] [[모스크바]]에 가서 마르크스·엥겔스 연구소원이 되고, 한때 반(反)파시즘 투쟁을 위해 유럽으로 돌아가기도 했으나 전쟁 중 대부분을 모스크바에서 연구 활동을 하며 〈발자크론〉을 비롯하여 많은 근대문학·사상사에 관한 논문을 집필. [[1945년]] 헝가리 독립과 함께 부다페스트 대학에 돌아갔다. [[1956년 헝가리 혁명]]에서 [[너지 임레|너지]] 정권에 가담, 한때 [[루마니아]]로 망명했으나 얼마 후 귀국하여 출생지인 부다페스트에서 사망했다.
 
== 저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