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 (잡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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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白潮)는 [[1922년]] 1월 창간된 순수 [[문예지]]로 초기 [[낭만주의]] 문학운동의 중심적 구실을 하며 3호까지 발간되었다. 예술로의 순교를 제창하며 탄생하였고, 예술을 세계의 일부가 아닌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인 동인들이다.<ref>{{저널 인용
|꺾쇠표없음이탤릭체=
|저자=박승희
|제목=1920년대 데카당스와 동인지 시의 재발견
|저널=한민족어문학
|권=47
|작성년도연도=2005
|쪽=325
}} </ref>
 
== 동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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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만주의적 경향 ==
이 때의 낭만주의는 [[3·1 운동]] 이후의 민족적 비관과 절망으로 말미암아 실망·퇴폐·비애·동경 등이 주조를 이룬 감상주의와 비슷한 것이었다. 동인의 한 사람이었던 박영희의 술회대로 《백조》 동인들은 모두 서정적인 애상(哀傷)의 시인·작가들로 《[[폐허]]》의 동인들과 흡사한 퇴폐·염세·감상·낭만적 경향의 작품들을 발표했다. 특히 《백조》파의 성격은 시인들로 대표되는데, 그들은 이념에서는 낭만주의, 기분은 퇴폐주의, 문학태도에서는 [[상징주의]], 예술관에서는 유미적(唯美的)인 것을 내세웠다. 따라서 《백조》파의 문학은 감상·낭만·퇴폐·유미적인 것을 공통된 문학경향으로 수용하고 있으며, 근대 문예사조 면에서 볼 때 후기 낭만주의(後期浪漫主義)의 영향이 지배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동인 [[홍사용]]은 〈봄은 가더이다〉(《백조》 2호), 〈나는 왕이로소이다〉(《백조》 3호) 등의 감상적인 낭만시를 발표했고, [[나빈]]은 소설 〈젊은이의 시절〉(《백조》 창간호), 〈별을 안거든 울지나 말걸〉(《백조》 2호), 〈옛날의 꿈은 창백하여이다〉 등을 통해 감상과 이상의 세계를 그렸다. 특히 나빈은 19세의 나이에 조숙한 필치로 장편 〈[[환희 (소설)|환희]](幻戱)〉를 발표하여 문단의 일대 주목을 받았고, 계속하여 〈[[물레방아 (소설)|물레방아]]〉, 〈벙어리 삼룡(三龍)〉, 〈[[뽕]]〉 등 낭만적 색채가 짙은 작품을 발표하여 그 앞날이 촉망되던 중 25세를 일기로 요절했다. [[이상화 (시인)|이상화]]는 《백조》 창간호에 〈말세(末世)의 희탄〉을 비롯하여, 명편 〈나의 침실로〉를 발표, 상징적인 수법으로 미지의 신비와 꿈의 세계를 동경하는 낭만시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박종화]]는 초기 작품으로 〈흑방비곡(黑房秘曲)〉, 〈밀실(密室)로 돌아가다〉, 〈정밀(靜謐)〉 등의 시를 통해 낭만적 꿈의 세계를 펼쳤다. 그러나 그가 원숙의 경지를 보인 것은 〈석굴암(石窟庵) 대불(大佛)〉, 〈청자부(靑磁賦)〉 등의 후기 작품에서였고, 뒤에 그는 역사소설 창작에 주력했다. 한편 [[박영희 (1901년)|박영희]]는 《백조》 창간호에 〈미소의 허영시(虛榮市)〉를 비롯하여 〈어둠 너머로〉, 〈월광(月光)으로 짠 병실(病室)〉, 〈꿈의 나라로〉 등의 비애와 감상의 낭만시를 발표했으나 뒤에 신경향파의 등장 전후부터 [[평론가]]로 활약하였다. 또한 [[현진건]]은 《백조》의 동인으로 출발, 초기에 〈[[빈처]](貧妻)〉, 〈술 권하는 사회〉, 〈타락자(墮落者)〉 등 현실에 육박하는 제재(題材)를 다루어, 완벽한 구성, 치밀한 묘사로 한국소설의 새로운 [[리얼리즘]]을 구현했다.
 
== 관련 항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