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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 형 [[루트비히 2세 (이탈리아)|이탈리아인 루트비히]]로부터 후계자로 내정되었지만 그의 배다른 삼촌이자 이종사촌형인 [[서프랑크]]의 왕 [[카를 2세 (서프랑크)|대머리 카를 2세]]에게 신성 로마 제국 황제관을 강탈당했다.
 
[[프랑크의 루트비히 2세|독일왕 루트비히]]의 장남으로, 황제 [[아르눌프 폰 케른텐|아르눌프]]의 아버지이다. 그는 잣니의자신의 아버지 [[프랑크의 루트비히 2세|독일왕 루트비히]]에 의해 [[856년]] [[판노니아]] [[후작]]에 임명되고, [[863년]] [[바이에른의 왕]]에 봉해졌다. 그러나 카를만은 [[861년]], [[863년]], [[864년]] 아버지 [[프랑크의 루트비히 2세|독일왕 루트비히]]에 대해 반란을 기도하다가 실패하였다. [[869년]]에는 [[모라비아 인]]들과의 전쟁에 참여하였고, [[875년]] [[8월]] 황제인 [[이탈리아]]의 루트비히 2세에 의해 후계자로 내정되었으나 [[서프랑크]]의 [[대머리 카를]]이 제관을 차지하였다. 카를만은 [[875년]]부터 이탈리아의 왕위를 요구하였지만 질병으로 이탈리아 원정을 할 수 없었고, 877년에야 이탈리아 왕관을 차지하였다. [[877년]] [[대머리왕 카를]]이 죽자 [[이탈리아]]로 가서 황제관을 요구하였으나 교황은 그에게 제관수여를 거부하였다. 877년부터 879년 사이 그는 [[뇌졸중]]에 걸려 무기력해졌고, 880년 와병중이던 그는 동생 소루트비히와 카를에게 영토를 넘기고 물러났다. [[뇌졸중]]으로 사망하였다.
 
그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로 공인받는데도 실패했고, 적자를 얻는데도 실패하였지만 그의 서자 [[아르눌프 폰 케른텐|아르눌프]]는 동프랑크 왕국의 왕위와 신성 로마 제국의 제관을 수여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