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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주가 있던 지역은 유사 이래 [[마한]]의 북쪽지역이었다. 그 이북에는 [[대방군]]이 있었다. 기원전 1세기 후반에 [[부여족]] 일파가 [[한강]] 유역으로 남하하자 [[낙랑]]과 [[말갈]]의 침입으로부터 방패막이로 사용하려는 마한의 의도로 서울 [[송파구]], [[강동구]]를 중심으로 [[백제국]]을 세울 수 있었다. 그러나 백제는 한강 일대를 손안에 넣고 급속히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해 결국 서기 9년에 [[경기도]] 남부와 [[충청도]] 북부의 [[마한]] 연맹체를 웅천([[공주시]]) 남쪽으로 밀어냈다. 지금의 경기도 일대는 백제의 중핵이 되었다.
 
[[314년]] [[고구려]] [[미천왕]]이 [[낙랑군]]에 이어 [[대방군]]을 병합함으로써 고구려와 백제는 패수([[예성강]])에서 국경을 접했다. 두 나라는 백제 [[근초고왕]]이 북방으로[[371년]] 대거[[평양성]]을 침공하여공격해 [[고국원왕]]을 전사사시키는전사시킨 이후 서로 영토를 뺏고 뺏기면서 항쟁을 벌이다가 [[475년]] 고구려가고구려 한성의[[장수왕]]이 백제를한성(漢城, 패망시키고[[위례성]])을 백제의점령하고 세력을백제를 [[직산]]([[천안]]) 이남까지 밀어내기에 이르렀다. 그 후 백제는 옛 수도지역을 회복했지만 이내 신라가 이를 점령해 신주(新州)를 설치했다.
 
=== 한산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