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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7년에 [[교황 인노첸시오 3세]]는 의회를 열어, 이단으로 규정하였던 [[파타리아]] 세력의 중심지이였고 게다가 로마 교황청과 전쟁에서 끝내 패배하였던 비테르보 시를 파문시켰다. 1210년 비테르보는 [[오토 4세]]를 간신히 무찔렀고 로마와 전쟁을 다시 벌였다.
 
13세기 이곳은 독재자 가티(Gatti)와 디 비코(Di vico) 가문들에게 번갈아가며 지배를 받았다. [[프리드리히 2세]]는 1240년에 비테르보를 [[구엘프와 기벨린|기벨린]]편으로 끌어들였지만, 비테르보의 시민들은 1243년 독일군대들을 도시에서 쫒아내버렸고쫓아내버렸고 그는 이곳으로 돌아와 공선전을 벌였다. 하지만 그 시점에서 비테르보는 항상 충성스러운 [[구엘프와 기벨린|구엘프]] 도시였다. 1257년에서 1261년 이곳은 [[교황 알렉산데르 4세]]의 지역이였다. 그의 후임자 [[교황 우르바노 4세]]는 비테르보에서 선출되었다.
 
1266-68년 [[교황 클레멘스 4세]]는 비테르보를 [[호엔슈타우펜 왕가|호엔슈타우펜]]과의 전쟁 기지로 삼았다. 그래서 이곳에 있는 교황의 궁전에서 그는 [[카시아 가도]]를 통과하던 [[슈바벤]]의 [[콘라딘]] 군대를 파문시켰다. 비테르보에서 선출된 다른 황제들로는 [[교황 그레고리오스 10세]], [[교황 요한 21세]], [[교황 니콜라오 3세]], 프랑스 출신 [[교황 마르티노 4세]]가 있다. [[나폴리 왕국]]의 [[카를로 1세]]가 선출시킨 교황을 인정하지 못한 비테르보 시민들은 [[콘클라베]]가 열리던 성당을 습격하여 두 명의 추기경을 사로 잡았다. 비테르보는 계속해서 파문을 당하였고 교황은 결국 86년간 비테르보를 포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