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비자금 관련 폭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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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로 내용 ==
[[2007년]] [[10월 30일]] 삼성그룹의 전직 법무팀장 [[김용철 (1958년)|김용철]]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과 함께 [[삼성그룹]]의 50여억원의 비자금을 자신이 관리해왔다고 폭로했다. 또한 [[검찰]] 및 시민단체에 대한 로비를 [[이건희]] 회장이 직접 지시했다는 문건을 공개했으며 [[삼성그룹]]에서는 그러한 문건의 존재를 확인하였다. 이후 [[김용철 (1958년)|김용철]]은 [[시사IN]]과 [[한겨레신문]] 등의 인터뷰를 통해 [[삼성그룹]]의 비자금 조성 방식과 전방위적 로비의 실체, [[삼성그룹]] 고위 임원들의 과도한 충성의 모습들을 공개했다. [[신동아]]에서는 2005년 X파일 사건 당시 김용철과의 [[비보도]] 전제의 인터뷰를 나중에 보도하기도 했다.<ref name="오프더레코드">{{뉴스 인용|url=http://www.donga.com/docs/magazine/shin/2007/12/10/200712100500023/200712100500023_1.html|제목=김용철 변호사 2005년 ‘오프 더 레코드’ 인터뷰|발행일자날짜=2007-12-01|출판사=신동아|확인일자=2009-06-13}}</ref>
 
=== 비자금 조성 및 관리 ===
김용철은 [[삼성그룹|삼성]] 전략기획실(구 구조조정본부), 그 중 [[김인주]] 사장이 실질 권한을 가지고 [[이재용 (기업인)|이재용]]시대를 열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삼성그룹|삼성]]이 계열사마다 비자금 액수를 할당했고, 반도체 라인, 타워팰리스 공사 등에서 이중장부를 이용한 [[분식회계]]를 통해 조직적으로 비자금을 조성했으며, 관련 자료는 100% 없앴다고 말했다. <ref name="편법제국"/> 또 [[삼성중공업]]에서는 없는 배를 띄워놓은 것처럼 조작해 분식회계를 저질렀고, [[삼성자동차]] 법정관리 기록은 담당 사무관을 매수해 불태워버렸다고 주장했다.<ref name="불의">[http://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7/11/26/2007112601338.html 김용철 "불의에 야합하는 세력들 의지 꺾이길 바라는 마음" [일문일답 전문&#93; - 1등 인터넷뉴스 조선닷컴<!-- 봇이 따온 제목 -->]</ref>
 
또 그는 [[삼성그룹|삼성]] 본관 27층에 경영지원팀 가운데 극소수만이 접근 가능한 비밀 금고가 있으며 안에는 각종 유가증권·의류권·상품권·순금이 들어있다고 말했다.<ref name="편법제국">{{뉴스 인용|url=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7|제목=“삼성은 비자금과 편법의 제국이다”|발행일자날짜=2007-10-29|출판사=시사IN|확인일자=2009-06-12}}</ref> 또 그는 여기에 보관되는 [[비자금]]은 극히 일부분이며, 대부분은 전략지원팀에서 전·현직 핵심 임원 1000여 명의 차명계좌에 현금·주식·유가증권 등의 형태로 분산되어 있다고 주장했다.<ref name="편법제국"/> 실제로 [[김용철 (1958년)|김용철]] 자신도 제대로 접근할 수 없는 자신 명의의 차명계좌가 [[우리은행]]에 있었고, 이 계좌에는 50억원대의 현금과 주식이 들어있었다.<ref name="편법제국"/>
 
=== 회장 지시에 의한 전방위적 뇌물 로비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과 [[김용철 (1958년)|김용철]]이 함께 공개한 "회장 지시 사항"이라는 제목의 문건에서는 "호텔 할인권을 발행해서 돈 안받는 사람(추미애 의원 등)에게 주면 부담 없지 않을까? 금융관계, 변호사, 검사, 판사, 국회의원 등 현금을 주기는 곤란하지만 호텔 할인권을 주면 효과가 있는 사람들에게 적용하면 좋을 것"이라는 글과 "와인을 잘 아는 사람에게 와인을 주면 효과적이니 따로 조사해볼 것. 아무리 엄한 검사, 판사라도 와인 몇 병 줬다고 나중에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글이 등장했다. [[김용철 (1958년)|김용철]] 등은 이 문건이 [[2003년 11월]]과 [[2003년 12월|12월]] 그룹 구조조정본부에서 작성된 것이라고 밝혔다.<ref>{{뉴스 인용|url=http://www.donga.com/fbin/output?n=200711040094|제목=천주교 정의사제구현단 ‘이건희 회장 지시사항’ 공개|발행일자날짜=2007-11-04|출판사=동아일보|확인일자=2009-06-13}}</ref>
[[김용철 (1958년)|김용철]]은 이런 [[삼성그룹|삼성]]의 로비에서 [[국회의원]], [[검찰]], 언론, 심지어는 백담사에 있던 [[전두환]]까지 로비의 대상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ref name="오프더레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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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 에버랜드 사건 로비 ====
{{본문|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 배정 사건}}
[[김용철 (1958년)|김용철]]은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 발행과 관련된 수사에서 법무팀장으로서 소속 변호사들, 인원이 부족하면 관계사 변호사들까지 동원해서 업무분담을 하고 전체적으로 지휘를 했으며, 그룹 내 원로임원들에게는 자신이 직접 찾아가서 시나리오대로 진술해 달라고 부탁한 사례도 있다고 주장했다. <ref name="시선집중">손석희 시선집중 2007년 11월 9일 인터뷰 중</ref>
 
[[김용철 (1958년)|김용철]]은 에버랜드 사건 주임검사 중 어떤 사람은 수사 중 어린이날에 [[에버랜드]]로 자기 가족들을 태우고 가서 접대 받으면서 공짜로 하루 종일 놀고 다음날 조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ref name="시선집중"/> 또, [[김용철 (1958년)|김용철]]은 이 검사가 전화로 [[김용철 (1958년)|김용철]]에게 삼성증권에서 펀드투자를 한 뒤 3000만원의 손해를 봤다며 손실보전을 요구해 보전해줬다고 주장했다.<ref name="하니인터뷰">{{웹 인용|url=http://www.hanitv.com/sisa/sub_index.php?movie_idx=410&depth1_idx=4&info_idx=59&pagesize=10&gotopage=1|제목=[THE 인터뷰] '빵집 아저씨' 김용철 변호사 |날짜=2009-06-12|출판사=하니TV|확인일자=2009-06-13}}</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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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l=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51219.html
|출판사=[[한겨레신문]]
|작성일자날짜=2007-11-19
|확인일자=2007-11-20
}}</ref>. 이용철이 묘사한 당시 상황과 사진으로 드러난 뇌물의 포장 상태 등이 김용철의 기존 증언과 거의 일치한다는 분석도 있다<ref>{{뉴스 인용
62번째 줄:
|url=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51232.html
|출판사=[[한겨레신문]]
|작성일자날짜=2007-11-19
|확인일자=2007-11-20
}}</ref>. 그러나 [[삼성그룹|삼성]] 측은 [[김용철 (1958년)|김용철]]의 폭로에 대하여 회사 차원의 조직적인 뇌물 공여는 전혀 없었다고 반박했다<ref>{{뉴스 인용
69번째 줄:
|url=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2952899
|출판사=[[중앙일보]]
|작성일자날짜=2007-11-20
|확인일자=2007-11-20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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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로의 배경와 과정 ==
=== 삼성의 법조계 인사 영입 ===
[[민주노동당 (대한민국)|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2000년]] 이후 [[삼성그룹]] 법무팀으로 진출한 전직 검사 14명 중 기업수사를 담당한 특수부 출신 검사가 총 10명”이며 현재 [[삼성그룹|삼성]] 법무팀에서 일하는 L, S, K 전 검사가 [[삼성그룹|삼성]]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2&aid=0000126248 법조인 기업행 어려워진다 - 세계일보]</ref>
 
검찰 혹은 법원 출신의 인사로 [[삼성그룹|삼성]]으로 전직한 인물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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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로의 과정 ===
[[2007년 8월]]~[[2007년 9월|9월]], [[김용철 (1958년)|김용철]]의 부인은 [[삼성그룹|삼성]]에 "성실하게 살고자 했던 남편이 [[삼성그룹|삼성]] 때문에 망가졌다"는 요지의 편지를 세 차례 보냈다.
한달 뒤인 [[10월 18일]] [[김용철 (1958년)|김용철]]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 [[함세웅]] 신부를 찾아갔고, 이에 대해 [[삼성그룹|삼성]]은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시작했다. <ref name="이학수">{{뉴스 인용|url=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71|제목=삼성 이학수 실장 김 변호사에게 ‘문자’ 6번 보내|발행일자날짜=2007-11-03|출판사=시사IN|확인일자=2009-06-12}}</ref> [[김용철 (1958년)|김용철]]은 [[10월 19일]] 밤 10시 경 [[이학수]] 실장과 [[김인주]] 사장이 잠실에 있는 김 변호사 전처의 집을 방문해, 1시간가량 문을 두드리다 갔다고 주장했다.<ref name="이학수" /> 또 [[김용철 (1958년)|김용철]]은 [[10월 20일]]~[[10월 21일]] 이학수 실장은 김용철 변호사에게 [[휴대전화]] [[문자]] “김 변호사 우리 서로 좋았을 때를 생각해봅시다. 나는 김 변호사와 이렇게 될 만한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나서 뭐든지 풀어보면 서로 유익할 것입니다. 긍정적인 판단을 기대합니다.”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ref name="이학수" />
 
=== 폭로의 동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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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로 이후 ==
=== 삼성의 반박 ===
[[2007년]] [[11월 5일]] 28쪽짜리 반박 자료에서 삼성은 [[김용철 (1958년)|김용철]] 변호사의 주장들을 반박했다.
 
삼성은 이 문서를 통해 [[비자금]]과 분식회계의 존재를 부인했고, [[차명계좌]]는 구조본 시절 동료의 부탁으로 만든 것이며, 검찰과 법원에 대한 로비도 근거 없다고 말했다. 또 제시된 문건의 내용도 단지 검토하는 차원이었으며, 기업 법무실에서 수사를 방해하거나 위증 교사한 적 없고, 에버랜드 판사에 30억을 갖다주라고 했다는 지시도 사실관계가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ref name="삼성입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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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삼성 비자금 의혹 관련 특별검사}}
 
이후 [[삼성 비자금 의혹 관련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삼성 특검법]]이 발의, 통과되어 관련자들이 조사되었으나, 결국 특검은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 배정 사건|삼성 에버랜드 사건]]과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저가 배정 사건|삼성SDS 사건]], 삼성화재 횡령 및 증거인멸 사건만을 기소한 채 나머지 대부분의 의혹에 대해서는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일각에선 수사의 범위가 너무 광범위해 지방 검사에게 넘겨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으나, 그대로 수사를 종결 후 주요 관련자들을 불구속 입건하는데 그쳐 "[[면죄부]] 특검"이라는 비난이 있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82250.html|제목=‘비자금 면죄부’ 특검 마침표 우려|발행일자날짜=2008-04-16|출판사=한겨레신문|확인일자=2009-06-13}}</ref>
 
=== 재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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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의 역할 ==
천주교 신자들은 물론 같이 활동했던 민주화 운동가와 [[정부]] 고위 관료들까지 나서 [[삼성그룹|삼성]]의 입이 되어 폭로를 만류했으며 심지어 현직 최고위급 관료도 설득을 위해 찾아왔으나 사제단은 이를 무릅쓰고 발표를 강행하였다. <ref name=시사인>[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70 군부 독재 부순 힘으로 자본 독재에 맞서다 - 시사IN] </ref>
 
사제단 대표를 맡고 있는 전종훈 신부는 “20년 전 독재 정권에 맞섰던 사제단이 이제는 경제 민주주의와 경제 정의를 위해 나섰다. ‘자본 독재’에 맞서기 위함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