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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나라의 시조는 [[주 무왕]](周武王)의 동생인 [[필공 고]](畢公高)이다. 아버지 [[주 문왕]]을 비롯한 주나라의 역대 군주들이 묻쳐 있는 왕릉이 있는 곳이 필나라였고, 그 곳을 무왕의 아우 고(高)가 필나라의 제후로 봉해졌고, 필공이라고 불린다. 그 후에 춘추 시대에는 필공 고의 후손인 [[필만]](畢萬)이 필나라를 진나라(晉)에게 바쳤고, 나라를 바친 후에눈 진나라로 가서 필만의 일족을 이끌고 정착한 곳이 진나라의 공족(公族) 환숙이 다스렸던 곡옥(曲沃)이었고, 환숙의 손자인 [[진 무공|무공]](武公)이 필만을 등용을 하였고, 필만은 무공의 신하가 된다. 그 뒤에 [[진 헌공 (궤제)|헌공]](獻公)의 밑에서 군공을 세웠고, 위나라(魏)를 헌공에게 하사 받고, 이후 필만은 위만(魏萬)이라는 호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 후 위씨 가문은 필만의 손자 위주(魏犨) 때부터 서서히 진나라 내부에 세력을 갖게 되었고, 춘추시대 말기 위서(魏舒) 때는 진나라의 육경(六卿)이 되었다. [[기원전 453년]] 위구(魏駒)가 진나라 육경 중에 하나인 지씨(智氏)를 멸망시켰다. 후에 그의 손자 [[위 문후|문후]](文侯)때에 주나라 왕에게 제후로 임명되었고, 한나라(韓), 조나라(趙)와 함께 진나라를 영토를 삼등분으로 갈랐다.
 
=== 건국 이후 ===
[[기원전 445년]] 위 문후가 위씨종주가 되면서 내정에는 [[이극]](李克), [[서문표]](西門豹)와 군사에는 [[오기]](吳起), [[악양]](樂羊)등 신하들을 등용하여 주변국보다 위나라의 국력이 강성하게 되어 칠웅 중 최강 국가가 됐다. 그리고 [[기원전 403년]] 위나라는 한나라, 조나라와 함께 주나라 왕이 제후로 임명되었고, 전국시대의 서막이 시작되었다.
 
[[기원전 396년]] 문후가 사망하였고, 아들 [[위 무후]]가 위나라 군주로 즉위하였다. 하지만 싫어하던 하서태수(河西太守) 오기가 초나라(楚)로 망명한다. 그러나 무후는 뛰어난 군주라서 오기가 없어도 국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예전보다 나라 주변에는 무혈입성으로 위나라를 확장 할수 없는 약한 세력이 없었고, 위나라는 강력한 나라만 공격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전쟁이 끊임 없이 계속되었고, 국가 재정에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 정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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