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미국문화원 폭발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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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미문화원 폭발 사건''' 혹은 '''대구 미국문화원 폭탄투척 사건''' 의 진실
'''대구 미문화원 폭발 사건''' 혹은 '''대구 미국문화원 폭탄투척 사건'''은 [[1983년]] [[9월 22일]] [[대구]]에서 발생한 미국 문화원에 폭탄을 투척한 [[반미주의]] 운동이었다. 1983년 9월 22일 대구 미국 문화원에 던져진 폭탄은 경비가 밀어내 정문으로 떨어졌고 정문에서 폭파되었다. 광주 민주화 운동 유혈진압을 묵인함으로써 사실상 [[전두환]] 군사정권을 지지한 미국에 대한 반감이 동기가 되어 일어난 사건들 중의 하나이다.
*증거자료
1)1983년 09월23일자 동아일보
2)1984년 4월에 세워진 '허병철(당시17세, 영남고1년)애국정신 선양비' 두류공원 입구(대구시 달서구 공원순환로 8 소재)에 조성
 
[[1983년]] [[9월 22일]] [[대구]]21시 33분 경 [[대구직할시]] 삼덕동 2가에 위치한 미국 문화원 정문계단에 앞에서누군가 대학생이두고간 던진보조가방에 강력한 폭발물이폭탄이 터져 [[미국허병철(17,대구영남고1년)학생이 문화원]]에 주둔자리에서 중이던숨지고, [[대구]] 중부중부경찰서 경찰서 김철호 순경삼덕파출소 김철호순경(25)등 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입은 사건이다
 
숨진 허군은 이 날밤 여학생 보조가방으로 쓰이는 26cm*26cm*5cm(가로*세로*두께)헝겊가방을 대구시경 정문근무자인 김도현일경(23)에게 가져왔고 이 보다 더 큰 가방이 미문화원 앞 계단에 있다고 신고했다. 삼덕파출소 김철호순경이 큰 가방을 찾기위해 허군을 데리고 현장에 도착한 순간 가방이 폭발을 했다.
언론은 [[1983년]] 대구 미문화원 폭파사건은 북한이 한·미간의 외교 분쟁을 노리고 행한 테러 사건이라고 보도했다. 1983년 12월 8일 대간첩 대책본부는 다대포 해안에서 생포된 진충남과 이상규 등 2명을 생포, 미 문화원 폭파사건은 북한에서 배후 조종한 소행이라고 발표했다.
허군은 몸이 찢기고 머리는 몸통에서 떨어져나가 40m떨어진 건너편 길가에까지 퉁겨갔고, 길가던 박세경(27,여), 김옥전(28,여)씨도 복부와 온뭄에 파편이 박혀 중상을 입고 경북대에 수술을 받았으나 중태였다고 한다.
 
사고발생 5시간만에 허군이 신고한 것과 비슷한 가방을 든 50대 남자를 미문화원까지 태웠다는 택시기사가 나타났다. 경찰은 택시운전기사 홍씨의 신고에 따라 165cm키에 약간 말랐으며 진회색 양복을 입고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50대 남자를 탐문수사 했다고 한다.
== 같이 보기 ==
* [[반미주의]]
* [[광주 민주화 운동]] ([[1980년]])
* [[광주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1980년]] [[12월]])
*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1982년]] [[3월]])
* [[강원대생 성조기 공개 소각 사건]]([[1982년]] [[4월]])
* [[광주미문화원 2차 방화 사건]](82년 11월)
* [[미국문화원 점거 농성 사건]] ([[1985년]])
* [[부산 미국 문화원 투석사건]]([[1985년]] [[4월]])
* [[동의대 사건]]([[1989년]])
 
유길종대구시경국장인 1)폭발물이 아주 정교하고 2)각종 국제회의를 앞두고 있고 3)80년 12월 9일 광주미공보원 및 지난해 4월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에 이어 발생한 사건등의 연관성을 미루어 이 사건을 '대공관계(공산주의)'로 보았다
{{대한민국의 폭발 사고}}
{{토막글|한국 근현대사}}
 
[[분류:1983년 대한민국]]
[[분류:대한민국 제5공화국]]
[[분류:대한민국-미국 관계]]
[[분류:1983년 테러 사건]]
[[분류:대한민국의 폭발 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