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기병: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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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필요|날짜=2014-8-28}}
[[Image파일:Horse back archery AD 4C.jpg|thumb|350px|.]]
'''궁기병'''(弓騎兵, Horse Archer)는 말을 탄 채 활을 쏘는 기사(騎射)를 목적으로 하는 전근대의 [[기병]]의 일종이다. 기마 궁수는 [[고대]]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족에 의해 처음 나타난 것으로 보이며 [[스키타이]]인, [[사르마티아]]인, [[파르티아]]인, [[사산 왕조]], [[흉노]]족, [[투르크]]인, [[몽골]]인, [[마자르]]족 외 여러 민족에게서 나타났다. 이들은 주로 기동성을 이용하여 활을 쏘고 물러나거나 측면에서 활을 쏘아 대형을 흐트러지게 하는 것을 주 목적으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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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칭기즈 칸]]은 몽골 활을 사용한 궁기병을 보유하여 다른 유목 국가들과 같은 전술을 통해 거대한 [[몽골 제국]]을 수립하였으며, 전성기 몽골 제국의 영토는 중국 대륙에서 유럽에까지 걸쳐 있었다.
 
== 궁기병의 쇠퇴 ==
유목민족의 궁기병은 유럽 국가들과의 전투에서 많이 이겼지만 9세기 말, 중국과 유럽에서 화포가 개발되며 조금씩 밀렸다. 그리고 11세기 중반, 각종 총포가 도입되며 궁기병들은 조금씩 밀린다. 몽골제국의 기병대도 헝가리를 치러갔다가 헝가리의 뛰어난 전술에 전멸할 뻔 했다. 그리고 대포와 화약, 화포, 총포, 총통이 개발되며 궁기병들은 전투력에서 밀리기 시작한다. 몽골제국 외에도 중국도 궁기병을 운용했고, 삼국과 고려, 조선도 궁기병을 운용했는데, 중국은 궁기병과 중기병을 섞어 운용했고,몽골제국도 5분의 2를 [[창기병]]으로 채웠다는 점으로 보면, 조선 세조 때부터 조선 기병대는 철저히 궁기병 위주였고, 결국 이 사건은 신립이 [[탄금대 전투]]에서 철저히 패하는 원인이 되었다. 당시 임진왜란 때였는데, 궁기병 위주였던 [[신립]]과 달리, [[고니시 유키나카]]의 군대는 조총과 장창을 중심으로 단련된 정예군이었다. 이후 다른 나라의 궁기병들도 근대화 이후 사라지거나, [[일본]],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등을 비롯한 최고의 신식무기 기병, 보병에게 무너지고, 이후 궁기병은 없어진다.
 
{{궁술}}
 
{{토막글|군사}}
[[분류:궁술]]
[[분류:기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