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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황제의 총애를 받다===
[[두영]](竇嬰)이 [[대장군]]을 지내던 때에 전분은 제조랑(諸曹郞)이었다. 이때 그는 고귀한 신분이 아니었고, 두영은 전분을 아들처럼 대하였다.
 
두영과 전분은 유학을 좋아하여, 유학자 조관(趙綰)을 어사대부(御史大夫)에, 왕장(王臧)을 낭중령(郞中令)에 임명하였다. 또 노(魯)나라의 신공(申公)을 초빙하여 명당(明堂)을 설치하고 관소를 폐지하여 유학의 예를 따라 복식 제도를 갖추고 열후(列侯)를 봉국으로 내보내려 하였다. 이듬해 조관이 황태후에게 상주하지 말 것을 권하니 두태후는 노하였고, 조관 · 왕장 등을 내쫓고 전분 · 두영을 파면시켰다.
 
===전성기===
전분은 비록 쫓겨났지만 총애를 받았고, 때때로 진언이 받아들여졌다. 줄을 서려는 사람들은 두영에서 전분으로 갈아탔고, 전분은 점점 오만해졌다.
 
전분은 [[소부 (관직)|소부]]의 땅을 자신의 집을 넓히는 데 쓰게 해달라고 하였다. 무제는 "이제는 무기고까지 차지할 셈인가!"라고 말하며 노하였다. 전분의 집은 매우 사치스러워, 비옥한 농원을 갖추었고 재화는 셀 수 없을 정도였다.
 
===관부와의 대립===
전분은 두영의 친구인 [[관부]](灌夫)와 대립하였는데, 서로를 탄핵하기에 이르렀다. 관부가 잔치에서 폭언을 내뱉은 일로 전분은 관부를 죽일 것을 상주하였는데, 두영이 이를 구해내려 하였으나 [[사공 (관직)|어사대부]] [[한안국]](韓安國) 이하의 의견 또한 갈렸기 때문에 오히려 두영은 무제의 문책을 받았다. 결국 [[원광 (전한)|원광]] 4년([[기원전 131년|기원전 131]]), 관부와 두영은 처형되었다.
 
===죽음===
얼마 후 전분은 온몸이 아파지는 병에 걸렸는데, 무제가 무당을 시켜 알아보니 무당은 두영과 관부가 전분을 매질하여 죽이려는 것이라고 아뢰었다. 머지않아 전분 또한 죽었고, 작위는 아들 전념(田恬)이 이었다.
 
훗날 회남왕의 모반이 발각되었을 때, 예전에 회남왕회남왕과 전분이 나누었던 이야기를 전해들은 무제는 만약 전분이 살아있었다면 일족을 모두 죽였을 것이라고 하였다.
 
[[분류:전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