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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김대중]]은 [[북한]]의 무력 도발로 제2연평해전이 발발하여 국군 6명이 전사하였음에도 [[국가안전보장회의]]를 4시간 35분만에 여는 등의 늦장 대응을 했다.<ref>[http://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4/08/2010040800168.html "침몰원인, 어떤 경우든 단호히 대응"], 《[[조선일보]]》, 2010.4.8</ref> 군통수권자인 김대중 대통령의 주재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우발적 충돌로 결론지었고, 같은 내용의 [[북한]] 통지문이 오자 그대로 수용했다. [[김대중]]은 교전 다음날 예정된 [[금강산 관광]]선을 출항시켰다.<ref>[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2062801073137026001 제2연평해전 10년… 貶毁(폄훼)의 역사 바로잡아야], 《문화일보》, 2012.6.28</ref> 제2연평해전 발발 다음날인 30일 김대중은 월드컵 결승전이 열리는 일본 [[사이타마 시|사이타마]]로 출국하여 결승전 경기를 관람했다. 김대중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서해교전 사태에 대해 냉정히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며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데 인식을 함께 했다. 김대중은 회담에서 “대북 포용정책 기조를 계속 유지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5&aid=0000109362]</ref> 교전 이틀 후 국군수도병원에서 해군장으로 거행된 합동영결식이 열렸을 때조차 김대중은 참석하지 않았으며 국무총리, 국방부 장관, 합참의장 등 내각과 군의 핵심 인사들마저 참석하지 않았다.<ref>[http://news.donga.com/3/all/20130703/56259083/1 [전문기자 칼럼/윤상호]피와 죽음으로 지킨 NLL], 《동아일보》, 2013.7.3</ref> 국방부는 군 장례식은 장례위원장 이하만 참석하는것이 관례라고 해명하였지만<ref>현문학,[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9&aid=0000220354 서해교전 희생장병 영결식, 총리·軍수뇌부 불참 '비난'], 《매일경제》, 2002년 7월 2일</ref> 해군장이었던 [[천안함 침몰 사건]] 희생자의 영결식에 [[이명박]] [[대통령]]과 [[김태영 (군인)|김태영]] [[국방장관]]은 참석했다. 이후 제2연평해전 전사자 추모식에도 김대중은 참석하지 않았고<ref>[http://news.donga.com/3/all/20120621/47173999/1 〔사설]연평해전 기념식에서 DJ 대신 反省할 사람들], 《동아일보》, 2012.6.21</ref><ref>[http://news.donga.com/3/all/20120621/47175059/1 [제2연평해전 10주년]“대한민국은 10년간 잊고 살았다, 나라 지킨 희생을…”], 《동아일보》, 2012.6.21</ref> [[이명박]]대통령은 2012년 추모식에 참석하였다. 이러한 까닭에 유가족과 생존자들은 제2연평해전을 ‘잊혀진 전쟁’으로 부르며 당시 [[김대중]] 정권의 처우에 분노하고 있다. 고(故) [[박동혁 (1981년)|박동혁]] 병장의 아버지 박남준 씨는 “부상당한 아들의 면회를 기다리며 [[TV]]를 보니 [[대통령]]이 [[일본]]에서 박수를 치고 있었다”며 “(출국한) [[서울공항|성남 비행장]]에서 [[국군수도병원]]까지 몇 분도 걸리지 않는데…”라고 말했다. [[윤영하]] 소령의 아버지 윤두호 씨는 “서해에서 전투가 벌어진 이후에 대통령이 출국한 것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전쟁이 나면 대통령은 밖에 있다가도 들어와야 합니다. 그게 정상적인 국가예요.”라고 김대중을 비판하였다.<ref>[http://news.donga.com/3/all/20100529/28689931/1 [제복이 존경받는 사회]<6·끝>윤영하 소령 아버지의 소원], 《동아일보》, 2010.5.29</ref>
 
잭 프리처드 전 한반도평화회담 미국특사는 저서 ‘실패한 외교’에서 해군 장병 6명이 희생됐는데도 김대중(DJ)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오직 햇볕정책에만 매달렸다고 밝혔다. 당시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서해교전 여파 때문에 7월 10일로 잡혀 있던 대북협상단의 평양 방문을 미루려 했으나 오히려 한국 정부가 예정대로 추진해 줄 것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이를 보다 못한 미국 정부가 오히려 ‘한국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북한을 상대하도록 놔두지는 않을 것’이라며 우리 정부에 주의(注意)를 줬다고 프리처드는 밝혔다. 그리고 미 정부는 협상단의 방북을 연기했는데, 그때의 한미관계가 이처럼 ‘기괴했다’고 프리처드는 덧붙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20&aid=0000416320]</ref>
 
=== 보상금 논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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