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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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총리실 관계자는 "김대중 정부 이전에도 각 군장으로 영결식을 거행할 경우 대통령과 총리는 참석하지 않고 각군 참모총장 이하만 참석했던 것이 관례"라고 해명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0199634 총리실 영결식 불참비판에 곤혹]</ref> 김대중이 서해교전에도 불구하고, 예정대로 일본을 방문한 것은 월드컵 공동개최국 국가원수로서 성공적인 월드컵 개최를 대내외에 천명하고 대한민국 국군이 안보태세를 유지하고 있음을 확고히 하는 의미가 있다는 해석도 있었지만<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0198743 김대통령 월드컵 폐막식 참석]</ref> 유가족과 생존자들은 제2연평해전을 '잊혀진 전쟁'으로 부르며 당시 김대중 정권의 처우에 분노하고 있다. 고(故) 박동혁 병장의 아버지 박남준 씨는 "부상당한 아들의 면회를 기다리며 TV를 보니 대통령이 일본에서 박수를 치고 있었다"며 "(출국한) 성남비행장에서 국군수도병원까지 몇 분도 걸리지 않는데…"라고 말했다. 윤영하 소령의 아버지 윤두호 씨는 "서해에 전투가 벌어진 이후에 대통령이 출국한 것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전쟁이 나면 대통령은 밖에 있다가도 들어와야 합니다. 그게 정상적인 국가예요."라고 김대중을 비판하였다.<ref name="news.donga.com"/>
 
잭 프리처드 전 한반도평화회담 미국특사는 저서 ‘실패한 외교’에서 해군 장병 6명이 희생됐는데도 김대중(DJ)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오직 햇볕정책에만 매달렸다고 밝혔다. 당시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서해교전 여파 때문에 7월 10일로 잡혀 있던 대북협상단의 평양 방문을 미루려 했으나 오히려 한국 정부가 예정대로 추진해 줄 것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이를 보다 못한 미국 정부가 오히려 ‘한국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북한을 상대하도록 놔두지는 않을 것’이라며 우리 정부에 주의(注意)를 줬다고 프리처드는 밝혔다. 그리고 미 정부는 협상단의 방북을 연기했는데, 그때의 한미관계가 이처럼 ‘기괴했다’고 프리처드는 덧붙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20&aid=0000416320]</ref>
 
==== 한일어업협정에 대한 비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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