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슈르바니팔: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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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바빌론의 왕위에 임명된 샤마시 슘 우킨과의 관계는 16년 동안 순탄했지만 샤마시는 아시리아의 피지배민족과 연합하여 반란을 꾀했다. 음모를 발견한 아슈르바니팔은 곧장 바빌론 경고를 내리고 특별조공을 부과했으나 거절당했다. 아슈르바니팔은 곧바로 군사행동에 들어가 반란을 진압했는데 이 반란은 거의 3년을 끌었다. 바빌론은 포위된 상태에서 극도로 굶주려야 했고 사람이 서로를 잡아먹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기원전 648년]] 샤마시 슘 우킨은 종말이 다가오자 불타는 자신의 궁전에서 자살했다. 아슈르바니팔은 도시를 재건하고 독립적인 지위를 다시 보장했지만 새로이 바빌론의 왕으로 임명된 칸달나우는 제의적인 왕의 역할만 허용했다.
 
그의 말년에 대한 기록은 거의 찾아볼 수 없어 그가 언제 죽엇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기원전 631년 또는 627년의 기록이 있음) 말년의 통치는 대체로 평온한 가운데 지냈던 것으로 보이지만 아시리아 제국은 점점 쇠퇴하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의 선례를 좇아 두명의 아들, [[아슈르 에텔 일라니와일라니]]와 [[신 샤르 이슈쿤에게이슈쿤]]에게 공평하게 권력을 나누어 공동으로 통치하게 했다.
 
==문화의 장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