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민당: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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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말, 인민당은 중경 임시정부에 인공과 각당 각파를 합쳐 건국회의를 열고 거기서 참된 임시정부를 수립하자고 제안하였다. 그러나 임정 측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기존의 중경 임정 추대운동만 계속 전개하였다. 임정 측은 [[1946년]] [[1월 4일]] [[김구]] 명의로 중경 임시정부를 계승하여 과도정권을 수립할 비상정치회의를 즉각 소집할 것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기존 주장과 다를 게 없어 좌파는 이에 호응하지 않았다.
 
인민당은 특정 계급이 아닌 [[노동자]], [[농민]], 근로 인텔리, 양심적 [[자본가]] 등 국민 전체를 대표하는 중도[[좌파]] 정당을 추구하였으나, [[1946년]] 제1차 미-소 공동위원회가 휴회로 들어간 후 인민당 내의, 이른바 48인파로 불린 좌파가 당을 이탈, [[조선신민당|남조선신민당]]과 [[조선공산당]]과 합당, [[남조선로동당]]을 결성하자 곧 헤체되고해체되고 말았다. 여운형은 남은 인물들을 모아 [[사회로동당]]을 창당했다. 사회로동당은 [[1947년]] [[2월 28일]] 해체되었다.<ref>이기형 《여운형 평전 (역사인물찾기 5)》(실천문학사, 2009) 464페이지</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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