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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15년([[기원전 165년|기원전 165]])에 죽었으나, 자식이 없어 후사가 끊겼다. 시호를 [[문 (시호)|문]](文)이라 하였다.
 
이듬해 4월 [[병인 #병인일|병인일병인]](丙寅)일, [[유비 (제도혜왕)|도혜왕]](悼惠王)의 아들 양허후(陽虛侯) [[유장려]](劉將閭)가 제왕에 봉해졌다.
 
[[전한 문제]]가 제나라의 태창령을 지낸 의사 [[순우의]]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본 것 중 문왕이 병사한 까닭이 있었고, 순우의는 소문으로 들은 문왕의 증세로 문왕의 병을 진단해 대답했다.<ref>순우의와 문제의 문답에서 제문왕을 시호로 부르고 당시의 제왕은 전에 양허후(제효왕의 이전 작위)를 지낸 인물이라고 했으므로, 이 문답은 문제의 재위(기원전 180년 ~ 기원전 157년)와 [[유장려|제효왕]] 재위(기원전 164년 ~ 기원전 153년) 중의 일이다.</ref> 그에 따르면 문왕이 병들었을 때 살이 찌고 몸을 잘 움직이지 못해 천식이 생겼고, 나이가 미처 20이 되지 못했으나<ref>아버지 애왕의 몰년으로부터 계산하면 문왕이 죽을 때의 나이는 적어도 25세를 넘긴다.</ref> 달리지 않고 걸어 천도에 순응하지 않았다. 나중에 의원들이 침을 놓아서 더욱 위독해졌는데, 문왕의 질병에는 침을 쓰면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ref>사마천: 《사기》 권105 편작창공열전제45{{위키문헌|:zh:史記/卷105|사기 권105 편작창공열전제45}}</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