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순 루치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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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박희순 루치아는 [[한양]]의 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녀에게는 같은 데에서 태어난 언니 [[박큰아기 마리아]]가 있었다. 박희순은 미모가 출중하여 일찍이 왕궁으로 불려져부름을 받아 [[순원왕후]]의 시녀가 되었다. 그녀는 영리하고 유능하여 빠르게 승진했다. 그녀는 [[조선어]]와 [[중국어|청국어]]를 모두 읽고 쓰는데 매우 능했다. 한편으로는, 그녀의 미모가 문제 거리였다. 그녀가 15세 때, 17세의 [[순조]] [[임금]]이 그녀를 보고서 미모에 매료되어 그녀를 유혹하려고 온갖 노력을 쏟았다.
 
[[궁녀]]는 일반적으로 그것을 영광으로 알았고 그들 중 대부분은 [[왕]]의 이목을 끌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고생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박희순은 왕비의 신임을 알고 있었으므로 큰 용기를 내어 그 유혹에 빠지지 않았다. [[궁궐]]에서는 그러한 소문이 돌았다. 후일에, [[앵베르]] [[주교]]도 그 이야기를 들었고,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용감하고 올곧은 행동이다. 그와 같은 사람은 그 전까지 [[조선]]에서 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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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인날짜 = 2014-10-12
}}</ref> [[1984년]] [[5월 6일]]에 [[서울특별시]] [[여의도]]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미사]] 중 이뤄진 103위 [[시성|시성식]]을 통해 [[성인]] 품에 올랐다.
 
== 각주 ==
<references />
 
== 참고 문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