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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위 시기 ===
네로는 [[서력 기원|서기]] [[54년]] 양부 [[클라우디우스]]의 친아들인 세 살 차이의 의붓동생 브리타니쿠스<ref>'''브리타니쿠스'''는 [[클라우디우스]]와 그의 세번째 아내이자 첫번째 황후인 메살리나([[22년]] - [[48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ref>를 제치고 황제로 취임하였다. 집권 초기 그는 [[철학]]자이자 [[정치가]]인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세네카]]와 근위군단 장교 부루스의 보좌를 받아 선정을 베풀었다. 또한, "[[제우스]] 신이 자신에게 [[로마 문화]]를 발전시키라는 명령을 했다."{{출처}}라는 신념에 따라 로마의 [[문화]]와 [[건축]]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55년]] 의붓동생인 브리타니쿠스를 독살(이는 모친 [[아그리피나]]의 소행이라는 주장도 있다)하였고, [[59년]]에는 정치적으로 간섭해 온 모친 [[아그리피나]]를, [[62년]]에는 아내 옥타비아를 살해하였다. 서기 [[64년]] [[기름]] 창고 사고가 원인이 되어 [[로마 대화재]]가 발생하여 민심이 혼란스러워지자, 당시 [[로마 제국]]의 신흥 [[종교]]였던 [[기독교]]에 책임을 덮어씌워 [[기독교도]]를 대학살함으로써 [[로마 제국]] 황제 중 최초의 [[기독교]] 박해자로 기록되었다.<ref>[[성공회]] [[사제]]이자 [[신약성서]]학자인 [[박태식]] 신부에 따르면, 네로 황제 당시 화재는 서기 [[64년]]에 9일간 일어났다. 로마 시내 14개 구역 중 10개 구역에 일어난 대형 화재였다. 당시 정부의 구호활동에도 불구하고 [[로마 제국]] 체제의 안위를 흔들 수 있는 네로 황제 방화설이 수그러들지 않자, 당시 "사악한 [[미신]]", "[[로마 제국]]에 의해 처형된 [[그리스도]]를 믿는 자"라는 공격을 받고 있었던 [[기독교도]]들이 사회혼란을 해결하려는 희생양으로 탄압당하기 시작해 [[화형]]으로 살해당했다. 《[[타르수스의 바오로]]》/[[박태식]] 지음/[[바오로딸]]</ref><ref>사도행전에 따르면 네로 황제 전에도 기독교는 [[헤롯]] 왕실과 [[산헤드린]] 의회에 의해 순교자가 발생하는 탄압을 받았다. 즉, 네로를 최초의 기독교 박해자라고 하는 것은 [[로마 제국]] 황제 중 최초라는 뜻이다.</ref> [[65년]]에는 정치 스승인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세네카]]에게 [[자살]] 명령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