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레오 9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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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누스의 기증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언급한 교황은 레오 9세가 최초였다. 1054년 미카엘에게 보낸 서신에서 그는 성좌가 하늘과 땅을 모두 아우르는 왕적 사제직을 지니고 있음을 알리기 위해 콘스탄티누스의 기증을 인용하였다.”
 
레오 9세는 미카엘 총대주교에게 콘스탄티누스의 기증은 위작이 아니라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진짜로 작성한 것이라면서, 그렇기 때문에 오직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인 교황만이 전체 교회의 최고 수위권을 지닌다고 주장하였다. 레오 9세는 선종하기 전에 콘스탄티노폴리스 교회에 [[실바칸디다의 훔베르트]] 추기경을 교황 특사 자격으로 파견하였다.<ref>Brett Edward Whalen, ''Dominion of God: Christendom and Apocalypse in the Middle Ages'', (Harvard University Press, 2009), 24.</ref>
 
가까운 친척 사이였던 [[신성로마제국의 하인리히 3세]]에 의해 교황으로 선출되어 교황좌에 착좌하였다. 교황의 수기 기록자 실바 칸디다의 훔베르트에 의하면 교황은 [[로마]]의 성직자들과 시민들이 원하여 교황직을 수락했다고 한다. 교황의 주위에는 젊은 개혁가들이 여러 명 있었다. 르미르몽의 위그, [[교황 스테파노 9세|로렌의 프레데리크]], 국무장관 훔베르트, [[교황 그레고리오 7세|힐데브란트]] 등 모두 쟁쟁한 인물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