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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키가하라 ===
게이초 3년([[1598년]]) 히데요시가 죽고, 뒤이어 [[1599년]] [[마에다 도시이에]]가 죽자, [[후쿠시마 마사노리]], [[가토 기요마사]], [[아사노 요시나가]] 등이 [[이시다 미쓰나리]]를 습격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 사건에 이에마사도 참가했다는 사료와 참가하지 않았다는 사료가 공존한다. 이 무렵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양녀를 아들 [[하치스카 요시시게|요시시게]]의 처로 맞이하여 사돈관계를 맺는 등 전형적인 무단파 친이에야스 다이묘로 활동한다.
 
게이초 5년([[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병을 핑계로 참전하지 않지만, 서군에 대해 병력을 파견하였고, [[오사카 시|오사카]] 주변 경호를 담당했다. 그리나, 아들 요시시게는 [[아이즈 정벌]]군에 파견되어 동군에 가담하였으며, 무공을 세우게 된다. 이에 전후 자신의 소령을 지킬 수 있었다. 이에마사는 서군에 가담한 응분의 책임을 지는 형태로 출가해 가독을 아들 요시시게에게 주었다.
게이초 19년([[1614년]])부터 시작된 [[오사카 전투]]에서 도요토미 가문측에 서달라는 밀서를 받고 요시시게를 설득하지만 반려되었고, 결국 [[슨푸 성]]의 이에야스를 방문하여 밀서를 제출한다. 오사카 전투 후, 요시시게의 전공으로 하치스카 가문은 [[아와지노쿠니|아와지 국]]을 하사받아 25만 7천 석의 다이묘가 되었다.
 
[[겐나]] 6년([[1620년]]) 요시시게가 요절한 후, 손자 [[하치스카 다다테루|다다테루]]를 보필하였고, 다다테루가 성인인 되는 [[간에이]] 6년([[1629년]])까지 [[도쿠시마 번]]의 기초를 다졌다.
 
[[센고쿠 시대]]를 경험한 원로로 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 시기에는 쇼군의 정치·군사에 대한 상담역으로 출사했다고 한다. 간에이 15년([[1639년]]) 음력 12월 30일 임종하였다. 향년 81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