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응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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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녀 = 안희관(장남), 안희돈(차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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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응모'''(安應模, [[1930년]] [[12월 24일]] ~ )은 [[대한민국]]의 [[경찰|경찰인]], [[외교관]], 행정관료, [[정치가]], 정무직공무원, 사회기관단체인이다. 본관은 [[순흥 안씨|순흥]](順興)이며 호는 송주(松洲)·차돌이·해산(海山)이다. 경찰 시절이었던 [[1968년]]에 [[베트남]] 주재 [[대한민국]] 대사관에 근무하여 잠시 [[외교관]]의 길을 걸었으며 제7대 치안본부장(경찰청장)과 제53대 내무부 장관(1990년 3월 ~ 1991년 4월)을 역임하였다.
 
"'''대한민국 경찰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하는 '''안응모'''는 [[대한민국 경찰]] [[순경]]에서 시작하여 치안본부장,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 충남도지사, 조달청장, 내무부 장관까지 지낸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ref>[http://www.asiae.co.kr/news/view.htm?sec=sisa2&idxno=2009120816452280011 ‘경찰의 살아있는 전설’ 안응모 전 장관 특강] 아시아경제 2009년 12월8일자 왕성상 기자</ref> [[1992년]] [[5월 23일]]부터 [[2010년]] [[4월 22일]]까지 [[단국대학교]] 총동창회 회장을 맡았다. [[대한민국 경찰]] [[치안총감]] 출신인 그는 현재 [[안중근]]의사숭모회 이사장으로 활동 중이다.
 
== 학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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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관 사건 ==
명지대 등록금 분쟁으로 촉발된 시위는 [[1991년]] [[4월 24일]] 상명여대(현 상명대)의 학자(학원자주화) 집회에서 지지,연대(連帶)에 대한 연설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오던중 투쟁의 구심이었던 [[명지대학교]] 총학생회장 박광철이 연행되었는데 이틀 뒤인 [[4월 26일]] [[명지대학교]] 앞에서 총학생회장의 석방을 위해 구출대회가 진행되었고, 시위가 격렬해지자 경찰이 진압을 시도하게 되었다.
 
[[백골단]]이라 불리는 사복 경찰관들이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시위 진압을 시작하자, 당시 [[명지대학교]] 경제학과의 학생으로 시위에 참여자하였던 [[강경대]]는 학교 쪽으로 도망치기 위해 1.5m 높이의 담벽을 넘으려다가 경찰에게 붙잡혀 쇠파이프로 두들겨 맞은 뒤 그대로 방치되었다. 이러한 광경은 곧 다른 학생들에게 목격되어 이들에 의해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한시간 만에 사망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1/1846884_6097.html|제목=시위학생 상처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출판사=[[MBC 뉴스데스크]]|작성일자=1991-04-26}}</ref><ref>{{뉴스 인용|url=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1/1846918_6097.html|제목=경찰, 백골단 폭행에 의한 명지대 강경대군 타살 확인|출판사=[[MBC 뉴스데스크]]|작성일자=1991-04-27}}</ref>
 
우발적으로 현장에서 발생한 사건이었지만 사건이 일어난 다음날인 [[4월 27일]],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사건의 책임을 물어 안응모를 내무부 장관에서 경질하였다.
 
== 경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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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2년 서울시 마포,중부경찰서 서장
* 1968년 월남대사관
* 1966년 치안본부 외사3계장
 
== 수상 기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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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조근정훈장
* 인헌무공훈장
* 중화민국훈장
 
== 주석각주 ==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