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시 다이지로"의 두 판 사이의 차이

감독으로 취임할 당시에는 승률이 저조할 정도의 극심한 침체를 겪으면서 5위에 머물렀던 팀은 7월 하순 들어서 자력 1위 달성은 사라졌지만 순조롭게 상위권 경쟁에 뛰어들면서 8월 2일에 감독으로 승격됐다. 이에 따라 구 오사카 긴테쓰 버펄로스의 OB로서는 처음으로 오릭스 버펄로스의 감독이 된 것이고 이듬해 2009년에도 계속해서 지휘를 맡을 것이라고 구단측이 발표했다.<ref>2010년에 감독으로 취임한 [[오카다 아키노부]]도 구 블루웨이브 선수 시절의 OB로서는 처음으로 오릭스 버펄로스의 감독이 됐다.</ref> 팀은 9월 상순에 2위로 급부상하여 그대로 정규 시즌을 마쳤는데 최종적으로 팀은 리그 2위를 기록하며 [[2008년 퍼시픽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을 결정지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제1 스테이지에서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와 맞붙었는데 그해 15승을 기록한 [[고마쓰 사토시]]를 1차전이 아닌 2차전에 선발 등판시키는 작전을 취했으나 실책과 불운의 타구가 겹치면서 팀은 패했다. 오이시는 “1차전에 [[곤도 가즈키]]를 선발로 내보낸 것에 후회는 없지만 투수 교체를 좀 더 빨리 했어야만 했다”라고 말했다.<ref name="Number_20081127_83">Number, 2008년 11월 27일자, p.83</ref>
 
2008년 추계 스프링 캠프에서는 이전 팀 동료였던 [[노모 히데오]]를 임시 투수 코치로서 초빙했고 또한 2009년에는 전년도부터 [[기요카와 에이지]], [[아카호리 모토유키]] 외에도 현역 시절부터 오랫동안 함께 지냈던 [[사사키 오사무 (야구인)|사사키 오사무]]를 투수 수석 코치로 영입하여 ‘투수 코치 3인제’로 팀을 정비했다. 하지만 2009년 시즌에서 팀 평균 자책점은 12개 구단 가운데 최하위로 떨어졌고 4명의 외국인 선수(터피 로즈, 알렉스 카브레라, [[그렉 라로카]], [[호세 페르난데스 (1974년)|호세 페르난데스]])들의 [[몸에 맞는 볼]] 등으로 모두인한 [[골절]]이나 장기 이탈하는이탈과 타선에서의 장타력도 부진을 겪었다. 결국 6월에 4승 14패, 승률 2할 2푼 2리의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는 등 시즌 종료까지 다시 부활할 조짐을 보여주지 못한 채 2년 만에 최하위에최하위(6위)로 끝났고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물어지고 구단본부장인 나카무라 가쓰히로(9월 30일부로)와 함께 해임됐다.
 
=== 그 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