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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olar_corona_above_statue_of_El_Cid_SF_CA.jpg|thumb|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얇은 안개 속 로드리고 디아즈 비바르의 동상 위에 떠오르는 태양 코로나.]]
 
'''로드리고 디아스 데 비바르'''(Rodrigo Díaz de Vivar, [[1040년]] [[부르고스]] 근처 [[비바르]] - [[1099년]] [[7월 10일]], [[발렌시아 (스페인)|발렌시아]]), 또는 '''엘 시드 캄페아도르'''(El Cid Campeador)로 알려진 그는 [[카스티야]] 귀족이자 장군 및 외교관이었으며, 후에 [[발렌시아 (스페인)|발렌시아]]에 망명하여 정복하고 통치하였다.
 
'''엘 시드'''라는 이름은 [[스페인]]의 관사인 엘(El), 그리고 [[아랍 연맹|아랍]] 방언 단어 سيد 시디 또는 sayyid는 '경(Lord)'이라는 뜻이다. 'Campeador'라는 명칭은 'campidoctor'에서 왔으며, 중세 [[라틴어]]로 개략적인 의미는 '투사(鬪士)'를 의미한다. 따라서 '엘 시드 캄페아도르'를 번역하자면 ''투사 영주님''이라는 뜻으로 그는 [[에스파냐|스페인]]의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된다.
추방당한 엘 시드는 이제 이슬람 왕조가 다스리던 [[사라고사]]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가 사라고사의 이슬람 왕조와 처음 접촉한 것은 1065년이었다. 스페인 북동부에 있는 사라고사의 왕 [[알 무타민]]은 허약한 왕국을 보호하기 위해 유명한 기독교 전사 엘 시드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엘 시드는 알 무타민과 후계자인 [[알 무스타인 2세]]를 거의 10년 동안 충성스럽게 받들었다. 그는 경험을 통해 스페인 아랍 국가들의 복잡한 정치와 이슬람 율법 및 관습을 터득했는데, 이는 나중에 그가 [[발렌시아 (스페인)|발렌시아]]를 정복하고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한편, 그는 패배를 모르는 장군으로서 꾸준히 명성을 쌓아갔다.
 
[[1082년]] 엘 시드는 알 무타민을 위해 레리다의 무어인 왕과 그의 동맹군인 기독교 군대를 격파했고 이 기독교 군대에는 [[바르셀로나]] 백작도 끼어 있었다. 1084년에는 [[아라곤 왕국|아라곤]] 왕 [[산초 라미레스]]가 이끄는 대규모 기독교 군대를 무찔렀으며 이런 승리에 고마움을 느낀 무어인 군주들은 그에게 후한 상을 내렸다.
 
=== 발렌시아 정복 ===
그의 첫 번째 조치는 [[발렌시아 (스페인)|발렌시아]]에서 바르셀로나 백작들의 영향력을 줄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1090년]] 5월 [[베렝게르 라몬 2세]]를 테루엘 근처의 테바르에서 참패시킴으로써 이 목적은 이루어졌다.
 
그 후 몇 년 동안 엘 시드는 발렌시아와, 이제 자기에게 공물을 바치게 된 발렌시아 통치자 [[알 카디르]]에 대한 지배력을 조금씩 강화했다. [[1092년]] 10월 카디(최고 행정관)인 [[이븐 야하프]]가 무라비트 왕조의 정치적 지원 아래 반란을 일으켜 알 카디르 왕을 살해했을 때, 엘 시드에게 운명의 순간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