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조 쓰네토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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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
쓰네토키의 싯켄 재직은 겨우 4년밖에 되지 않았고, 당대에도 높은 평가는 받지 못했다. 대숙부(大叔父)로서 교토 [[로쿠하라 단다이]](六波羅探題)의 호쿠보(北方)였던 시게토키는 전임 [[내대신]](内大臣) 미나모토노 사다미치(源定通)에게 「쓰네토키가 사망했다는는사망했다는 하나 꺼릴 것은 없다」고 했는데, 선대 야스토키나 요시토키가 사망했을 때 조정의 정무나 행사가 30일 동안이나 지연되는 지경이었던 것과는 다른 모습으로, 4년밖에 싯켄에 있지 않은 쓰네토키의 정권은 요시토키와 야스토키의 정권과는 동렬로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만 교토 조정은 쓰네토키 사후 30일 동안 부정을 피하는 의식을 거행하였다.
 
동생 도키요리가 쓰네토키보다 더 재능이 뛰어났다는 평을 받고 있는데, 《아즈마카가미》를 보면 야스토키가 쓰네토키에게 정무에 대한 훈계를 남기고 나흘 만에 미우라 씨(三浦氏)와 유키 씨(結城氏)・고야마 씨(小山氏)간에 말다툼이 일어났고, 쓰네토키는 미우라 씨의 편을 들어 자신의 식구를 보내 돕게 했는데, 도키요리는 조용히 지켜볼 뿐이었다. 야스토키는 쇼군의 후견인이라는 중임을 맡은 처지로 초연하고 공평한 조치를 해야 하는데 쓰네토키의 처치는 신중함을 벗어난 처사라며 그에게 근신을 명했다고 한다. 다만 이것은 도키요리의 싯켄 상속을 정당화하기 위해 조작된 일화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