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중앙일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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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2월 16일]] [[여운형]]이 중앙일보의 사장에 취임하여 [[1933년]] [[3월 7일]]부터 제호를 조선중앙일보로 고쳤다. 이 무렵 [[동아일보]], [[조선일보]]와 함께 '''조선의 3대 일간지'''로 자리매김하였으며 사옥을 증축하고 소속 잡지로 《중앙》, 어린이 잡지 《소년중앙》을 발행하기도 하였다.
 
1937년 11월, 신문사는 결국 폐간이 되었는데, [[몽양 여운형]] 기념사업회, [[한겨레]], [[민족문제연구소]] 등 진보 성향 단체에서는 일장기 말소사건은 조선중앙일보가 원조이며, [[동아일보]]는 [[조선총독부]]에에 선처를 구하며 복간을 했지만, 조선중앙일보는 [[조선 총독부]]의 친일 성향 사장 제안을 거부하고 폐간을 선택해 민족정신은 [[조선중앙일보]]이었다고조선중앙일보이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1936년 8월 13일자 동아일보의[[동아일보]]의 지방판 기사가 발굴되면서 조선중앙일보의 원조설은 논파되었다.
 
채백 [[부산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저서 <사라진 일장기의 진실>(커뮤니케이션북스 펴냄)을 통해 조선중앙일보가 가장 먼저 손기정의 우승사진에서 일장기를 말소했다는 주장이 학계에서 널리 알려졌지만 동아일보도 조선중앙일보와 같은 날 이 사진을 보도했다고 말한다. "8월13일자 동아일보 조간 지방판에 조선중앙일보(서울판)가 게재한 사진과 똑같은 사진을 실었는데 서울판이 당일 새벽에 인쇄하던 반면 지방판 조간은 그 전날 인쇄하던 관행에 비춰, 손기정의 우승 사진은 동아일보가 먼저였다고 결론 지을 수 있다"고 말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2450216 일장기 말소 사건의 진실은?] 2009-01-12 [[연합뉴스]]</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