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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사례교위 독군종사가 되어 평양현 [[곽원 (후한)|곽원]](郭援)과 [[고간 (후한)|고간]](高幹)을 토벌하고 선봉장이였던 [[방덕]]이 [[곽원 (후한)|곽원]]을 격파하고 [[곽원 (후한)|곽원]]의 목을 베었다.<ref>관장마황조전(關張馬黄趙傳)</ref>'''
 
이윽고 조칙으로 서주자사가 되고 이후 간의대부에 임명된다. 그 뒤 아버지 [[마등]]은 [[한수 (후한)|한수]]와 사이가 벌어져 위위로 조정에 소환되고, 동생 [[마휴]](馬休)와 [[마철]](馬鐵)도 각기 봉거도위, 기도위에 임명되어 모두 [[업 (중국지명)|업]](鄴)으로 이주했다. 편장군이 된 마초만 양주에 남아 [[마등]] 군영을 장악해 통솔하였다.
 
건안 17년([[212년]]), 마초는 [[한수 (후한)|한수]]와 연합해 [[동관 전투|반란]]을 일으킨 뒤 군대를 이끌고 동관까지 진군한다. 《[[삼국지연의]]》에서는 문하시랑 [[황규]](黄奎)와 손을 잡아 [[조조]]에 대한 반란을 기도하고, 처형된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조조]]와 싸움을 벌인다. [[조조]]는 [[한수 (후한)|한수]], 마초와 회담하였는데, 마초는 비밀리에 [[조조]]를 체포할 생각이었으나 [[허저 (조위)|허저]](許褚)가 엄하게 호위하고 있었기 때문에 무위로 돌아가고 만다. 이것이 《삼국지연의》에서 마초와 [[허저 (조위)|허저]]가 일대일로 격돌하는 장면을 연출하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조조]]가 [[가후]](賈詡)의 계략으로 마초와 [[한수 (후한)|한수]] 사이를 멀어지게 했으므로 둘은 서로 의심하게 되는데, 그 때문에 마초는 패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