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 (오호 십육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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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3년]], 부견은 천하 통일을 목표로 [[여광 (후량)|여광]](呂光)에게 서역을 정벌을 명하는 한편 동진 토벌을 위해 96만 명(실제로는 20만 명으로 추정)의 대군을 동원하였다. 부견의 원정군은 동진의 국경 전체에 걸쳐서 공격해 들어갔으나 부견이 직접 참여한 비수(淝水) 방면의 전선에서 배반으로 인해 크게 패배하여 전군이 패주하였다. ([[비수대전]](淝水大戰)) 비수의 패전으로 전진은 혼란에 빠졌으며 하북에서는 [[모용수]]가 [[후연]](後燕)을 건국하고 관중에서는 [[요장]](姚萇)의 [[후진 (오호십육국)|후진]](後秦), [[걸복국인]](乞伏國仁)의 [[서진 (오호십육국)|서진]](西秦), 여광의 [[후량]](後凉), [[모용홍]](慕容泓)의 [[서연 (오호십육국)|서연]](西燕) 등이 건국되었다. 부견은 모용홍, 모용충의 서연의 공격을 받아 장안을 버리고 도주하였으며, 요장에게 체포되어 살해되었다.([[385년]])
 
부견의 서장자 [[부비 (전진)|부비]](苻丕)는 [[업 (중국지명)|업]](鄴)에서 [[모용수]]의 공격을 받아 1년여 동안 농성을 벌이다 탈출하여 진양(晉陽)에 이르렀는데, 부견의 사망 소식을 듣고 진양에서 황제에 즉위하였다. 부비는 부견의 복수를 위해 후진을 공격하기 위해 전열을 정비하였으나 [[386년]], [[모용영]](慕容永)의 공격을 받아 패배하고 동진군에 의해 살해되었다. 농서 지역의 전진 세력을 이끌던 [[부등]](苻登)은 부비의 사망 소식을 듣고 황제에 즉위하고 전열을 정비하여 후진을 공격하였다. 부등과 관중 일대의 전진계 군벌들과 제휴하여 후진의 요장을 수 년 동안 공격하였는데 [[389년]]에 본거지를 기습당해 세력이 쇠퇴하였다. 이후 [[393년]], 후진의 요장이 죽자 부등은 후진에 대한 최후의 공격을 감행하였다. 그러나 [[요흥]](姚興)의 반격을 받아 크게 패배하여 살해되었으며 태자 [[부숭]](苻崇)이 황중(湟中)으로 도망쳐 제위에 올랐다. 그러나 서진의 공격을 받아 부숭은 살해되었고 이로써 전진은 완전히 멸망하였다.
 
== 역대황제일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