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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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적 ==
전란 중에 어머니를 잃었는데, 같은 군 사람 마태(馬台)가 어머니를 찾아 주었다. [[하북 전투]] 당시 [[조조]]가 [[원상 (후한)|원상]]과 [[원희 (후한)|원희]]를 토벌하고 [[유주 (중국)|유주]]를 차지할 때 발탁되어 사공군모연이 되었다. 마태가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짓자, 손례는 마태를 도주시키려 했으나 마태는 거절하고 자간주부 [[온회]]에게 직접 출두했다. 온회가 그 행위에 탄복하여 조조에게 상세히 아뢰자, 둘 다 사형보다 한 단계 감형되었다. 하간군승이 되었고, 영양도위로 승진했으며 노국의 상이 되어 자신의 녹봉을 들여 노산의 도적을 평정했다. 산양, 평원, 평창, 낭야군의 태수를 역임했다.
[[태화 (위)|태화]] 2년([[228년]]), [[조휴]]가 주방의 거짓 투항을 믿고 환현까지 진격해 들어가자, 손례는 조휴에게 깊숙히 들어가지 말도록 간했으나 듣지 않아 결국 협석에서 대패했다. 양평태수로 승진했고, 내직으로 들어가 상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