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이·망소이의 난: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잔글 →개설: 문장 사소한 정리 |
→개설: 문맥 교정,차별 표시 |
||
2번째 줄:
== 개설 ==
반란군은 공주를 함락하였다. 고려 조정은 선유(宣諭)에 실패하여, 정황재(丁黃載)와 장박인(張博仁)에게 이것을 진압하게 했으나 쉽지 않자 명학소를 충순현(忠順縣)으로 승격하게 하는 등 회유(懷柔)해서 봉기를 접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불응하고 [[예산군|예산현]]을 공략한 봉기민(蜂起民)들은 [[1177년]]고려 명종 7년 정월에 관군의 진압에 항복했다가 조정의 비열한 처사에 불만하고 그 해 2월 재봉기하였다
지배계급만을 대변하던, [[예산군|예산현]] 덕산에 소재한 [[가야사]](倻倻寺)와 직산에 있는 홍경원(弘慶院)을 휩쓴 봉기민은 [[아산시|아주]](牙州)와 [[청주시|청주목]]을 공격했다. 고려 조정은 충순현을 명학소로 재강등하고 대규모 관군을 동원해 봉기민을 맹렬히 총공격하였다. 이때는 농번기라 봉기민 중 농민병이 이탈하고 식량과 무기가 매우 부족하여 정세가 불리해졌다. 이리하여 망이와 망소이를 위시한 봉기민들은 체포되고 봉기는 7월에 진압당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