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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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뇌를 ‘석궁’(石弓)이라고 칭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돌]]이나 [[납]]덩이를 쏘는 서양의 [[탄궁]]이 쇠뇌와 구조가 유사하여 생긴 오류이다. 쇠뇌는 돌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ref>{{서적 인용|저자=민승기|제목=조선의 무기와 갑옷|출판사=가람기획|날짜=2004-09-30|series=조선사회사 총서|volume=22|쪽=104}}</ref>
 
== 역사유럽 ==
크로스유럽에서의 보우의쇠뇌의 기원은 오래전 [[고대 그리스]] 시대로 거슬러올라간다거슬러 올라간다. 그 옛날 알렉산드리아의 헤론이 기록한 ‘가스트라페테스(gastraphetes)’가 그 기원이라고도 한다. 이 활에는 꼬리 부분에 둥근 대가 달려 있어서 끝을 지면 등의 딱딱한 곳에 댄 뒤 구부러진 대를 배에 대고 조정하는 사람의 무게로 현을 당기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래서 가스트라페테스, 즉 ‘배에 대는 기구’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하지만 이것이 나중에 크로스 보우로쇠뇌로 사용되었는지는발전되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이처럼 유럽의유럽에서 크로스사용된 보우의쇠뇌의 기원은 여러 가지 설이 있다. [[4세기]]경에는 사냥에 사용되었다고도 한다. 하지만 그로부터 [[7세기]]가 흐른 1066년에 [[노르만족]]이 [[그레이트브리튼 섬]]을 침공했을 때 그들이 사용했다는 것은 사실이며 그 이후에이후로 많은 기록이 남겨져 있다남겨졌다. 노르만족은 크로스 보우를쇠뇌를 군사뿐 아니라 스포츠에도 사용했지만 전쟁이 끊이지 않고 계속된 그 시대에 크로스 보우의쇠뇌의 위력은 절대적이었다.<ref>{{서적 인용|저자=이치카와 사다하루 |제목=《무기와 방어구 / 서양편》|출판사=[[도서출판 들녘]] |출판위치=서울시 |날짜=2000-11-15|쪽=215쪽}}</ref>
 
그러나무기의 이 크로스 보우의 위력은위력이 [[그리스도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잔혹한 무기로 여겨져 [[교황 인노첸시오 2세]]는 사용을 금지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대조적으로 [[신성로마제국]]의 [[콘라트 3세]]는 자신이 통치했던 시대(1138년 ~ 1152년)에 크로스 보우를쇠뇌를 정식 무기로 채택했다. 크로스 보우를쇠뇌를 소지한 병사가 실전에 임한 것은 [[제3차 십자군]] 원정 때인데, [[잉글랜드의 리처드 1세|사자심왕 리처드 1세]]가 이끄는 군대는 [[무슬림]] 전사들을 쏘기 위해 이 무기를 소지했다. 리처드 1세가 죽고 난 후 크로스 보우는쇠뇌는 [[롱 보우장궁]]의 등장과 더불어 잉글랜드에서는 공성무기가 되었으며 다른 유럽의 나라에 적잖이 전파되었다.
 
무기로서의 크로스 보우의쇠뇌의 수명은 [[15세기]]경까지였는데경까지였고, 그후에는그 후에는 사냥과 스포츠에서 사용되었다. 16세기 이후 사냥과 스포츠에 사용된 크로스 보우는쇠뇌는 그다지 클 필요가 없어 경량화되어경량화되었고, 더욱 다루기 쉽게쉽게끔 변해갔다.<ref>같은 책, 216쪽</ref>
 
== 종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