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차 노예전쟁"의 두 판 사이의 차이

편집 요약 없음
잔글 (Salamander724 사용자가 스파르타쿠스 전쟁 문서를 제3차 노예전쟁 문서로 옮겼습니다)
|분쟁=제3차 노예전쟁
|전체=[[노예전쟁|로마 공화정의 노예전쟁]]
|그림=Spartacus II.JPG
|설명=스파르타쿠스의 죽음.
|지도=Italy and environs, 218 BC.gif
|지도설명=로마 공화정 당시의 이탈리아
 
=== 크라수스와 스파르타쿠스 ===
[[파일:Spartacus II.JPG|thumb|300px|스파르타쿠스의 죽음]]
 
기원전 71년 스파르타쿠스와 노예군은 [[이탈리아]] 남쪽으로 내려와 있었다. 다급해진 원로원은 [[법무관]] [[크라수스|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에게 전직 집정관이 남긴 2개 군단과 새로운 6개 군단을 합쳐 모두 8개 군단을 주며 토벌을 맡겼다. 그 때까지 별다른 군 경력이 없었던 [[크라수스|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는 이 반란 토벌로 공을 세우고 싶어했기에 매우 잔인하고 악랄한 방법으로 반란군을 응징했다. 기록에 따르면, 첫 번째 전투에서 패하자 적에게 등을 돌린 군단병 60명을 뽑아 나머지 동료들이 죽이게 했다고 하며, 군단병은 크라수스가 적보다 더 위험한 존재라고 말했다고 한다. 크라수스의 잔인함 때문인지 로마군은 노예군을 상대로 승기를 잡고 노예군을 험준한 산속에 가두어 두는 데 성공했고, 스파르타쿠스는 키리키아 해적과 협상을 하여 [[시칠리아]]로 달아나려 했다. 그러나 [[메시나 해협]]을 건너 시칠리아로 도망치려는 시도는 모두 불발로 끝나고 스파르타쿠스는 고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