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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슬에서 물러난 뒤에는 예안(禮安)에 은거하면서 후진 교육에 전념하였다. [[원나라]]를 통해 정주의 역전(易傳)을 연구하여 후진을 가르쳤다.
 
경사(經史)에 통달했고, 『고려사』 열전에 ‘역학역학(易學)에 더욱 조예가 깊어 복서(卜筮)가 맞지 않음이 없다.’고없을 기록될 만큼정도로 뛰어난 역학자였다. <ref>『고려사』</ref>
 
충청북도 단양군에 있는 명승지로 [[단양팔경|단양 팔경]]의 하나인 사인암(舍人巖)은 그가 고려 말기에 사인 벼슬로 있을 때 그곳에 휴양을 가서 이름이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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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중대]]
* [[사인함]]
 
==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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