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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대 등록금 분쟁으로 촉발된 시위는 [[1991년]] [[4월 24일]] 상명여대(현 상명대)의 학자(학원자주화) 집회에서 지지,연대(連帶)에 대한 연설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오던중 투쟁의 구심이었던 [[명지대학교]] 총학생회장 박광철이 연행되었는데 이틀 뒤인 [[4월 26일]] [[명지대학교]] 앞에서 총학생회장의 석방을 위해 구출대회가 진행되었고, 시위가 격렬해지자 경찰이 진압을 시도하게 되었다.
 
[[백골단]]이라 불리는 사복 경찰관들이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시위 진압을 시작하자, 당시 [[명지대학교]] 경제학과의 학생으로 시위에 참여자하였던 [[강경대]]는 학교 쪽으로 도망치기 위해 1.5m 높이의 담벽을 넘으려다가 경찰에게 붙잡혀 쇠파이프로 두들겨 맞은 뒤 그대로 방치되었다. 이러한 광경은 곧 다른 학생들에게 목격되어 이들에 의해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한시간 만에 사망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1/1846884_6097.html|제목=시위학생 상처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출판사=[[MBC 뉴스데스크]]|작성일자날짜=1991-04-26}}</ref><ref>{{뉴스 인용|url=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1/1846918_6097.html|제목=경찰, 백골단 폭행에 의한 명지대 강경대군 타살 확인|출판사=[[MBC 뉴스데스크]]|작성일자날짜=1991-04-27}}</ref>
 
우발적으로 현장에서 발생한 사건이었지만 사건이 일어난 다음날인 [[4월 27일]],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사건의 책임을 물어 안응모를 내무부 장관에서 경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