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사학: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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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필요|날짜=2015-08-02}}
[[File파일:Allgemeine Geschichte Der Musik von Johann Forkel.jpg|thumb|근대적 인문과학으로서의 음악사학의 시작을 알린 독일의 음악사학자 요한 포르켈의 "일반음악의 역사Allgemeine Geschichte der Musik"(1788)]]
'''음악사학'''(音樂史學, {{llang|En|Music History}}, {{llang|de|Musikgeschichte}})은 [[음악]]을 학문의 대상으로 삼아 연구하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기초학문이자 [[인문학]]의 하위분야이다. [[음악사학]]에서는 [[음악]], [[음악]]의 [[역사]], [[음악]]을 통해서 본 인간의 [[역사]]를 연구하여 인간과 인간문화에 대한 지평을 보다 넓게 이해하고 인간의 발전에 기여하는 인문정신의 실현을 목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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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음악사학을 연구하는 사람을 음악사학자(音樂史學者)라고 한다. 음악사가(音樂史家)라는 용어는 잘 쓰이지 않는다.
 
== [[서양음악사학]] ==
=== 개요 ===
[[File파일:귀도 다레초.jpg|thumb|right|125px|중세시대 이탈리아의 음악사학자 귀도 다레초]]
[[서양음악사학]]은서양음악사학은 [[서양음악]]을 연구대상으로 삼는 학문이다. 고대 그리스 시대를 거쳐 중세시대에는 대학에서 7가지 [[자유 인문 학문]]중 하나로 교육 및 연구되었고 르네상스시대를 거쳐 18세기 [[포르켈]]등을 위시한 독일을 중심으로 근대과학으로서의 인문학으로 발전되었다.
 
=== 근대 이전 ===
[[File파일:Tinctoris.jpg|thumb|left|150px|르네상스시대의 뛰어난 음악사학자인 네덜란드의 요하네스 팅크토리스]]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 [[피타고라스]] 등은 뛰어난 [[음악사상]]가이기도 했다. [[프톨레마이오스]]와 [[아리스토크세누스]], 아리스티데스 [[퀸틸리아누스]] 등은 고대 그리스음악의 [[음악이론]]을 구축해낸 훌륭한 저서들을 배출해냈다. [[중세시대]]에는 [[자유 인문 학문]]중 하나로 대학에서 교육 및 연구되었고, [[기보법]]이 처음 발전했으며, [[보에티우스]]와 [[마르치아누스 카펠라]], [[귀도 다레초]] 등이 뛰어난 [[음악이론가]]였다. [[르네상스시대]]의 뛰어난 음악이론가였던 [[요하네스 팅토리스]]는 음악의 역사적 기록에 있어 기법이나 양식적 평가에 기준을 두지 않고 옛 음악과 교회 내의 현학적 이론을 암묵적으로 거부하면서 요하네스 [[오케겜]] 등 작곡가들의 개별적 스타일과 기교를 자전적 배경과 함께 기록하였다. 그의 인본주의적 연구와 전기(biography)를 통한 접근방법은 결국 음악사학을 발전시키는 기초가 되었으며 또한 점진적인 변화를 이끈 초기 단계를 형성하였다.
 
=== 근대 이후 ===
[[File파일:Charles Burney.jpg|thumb|right|200px|근대적 인문과학으로서의 음악사학을 발전시킨 주역 중 하나인 영국의 찰스 버니의 초상]]
18세기 시민계층이 점차 성장하는 와중에 나타난 [[계몽주의]]는 국가별로 역사에 관한 문헌이 조직적으로 관리하도록 하였고, 학문의 대중화를 이루어냈으며, 특히 음악에서는 [[고전주의 음악사]]와 같은 국제적으로 통일된 음악양식을 이끌어냈고, [[공공음악회]]와 [[출판문화]]의 발전은 음악에 대한 관심을 더욱 증대시켰다. 이러한 [[계몽주의]]의 발전과 시민들의 음악, 나아가 과거 음악에 대한 관심은 근대적 [[인문학]]으로서의 [[음악사학]] 발전의 단초가 되었고 공식적인 음악역사의 기록은 가장 보편적인 영역을 포괄하는 역사적 접근방식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어 역사기록의 필수 요소인 주제 영역의 정의, 자료의 비판적인 검토, 연역적 해설, 시대구분, 변화와 인과관계, 그리고 전기를 포함시키게 되었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음악사학자는 독일의 [[포르켈]], 영국의 [[찰스 버니]], [[존 호킨스]]등이 있다. 특히 [[포르켈]]은 18세기 [[괴팅겐 대학교]]에서 근대적 의미의 [[음악사학]]을 처음으로 교수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19세기에는 [[독일]]의 국력상승과 [[독일]] 중심의 학문 발전, 일반 [[역사학]]과 [[역사주의]]의 발전으로 인해 [[음악사학]]도 독일을 중심으로 비약적 발전을 하였다. 1861년 [[한슬리크]]가 [[빈 대학교]] 인문대학 음악사학과 정교수직을 부여받았으며 이후 [[베를린대학교]], [[프라하대학교]], [[스트라스부르대학교]] 등 전 유럽으로 확장되었다. 1868년 독일음악사학회가 창립되었고 1927년 국제음악사학회가 창설되었다.
 
[[File파일:Carl Dahlhaus.jpg|right|170px|섬네일|20세기 가장 뛰어난 음악사학자 중 하나인 독일의 칼 달하우스(1928-1989]]
 
 
=== 서양음악사학의 연구대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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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반 및 녹음자료
 
== [[동양음악사학]] ==
[[File파일:중국음악사학자 양인리우.jpg|thumb|left|250px|현대의 가장 뛰어난 중국음악사학자인 양인리우(楊蔭瀏, 1899-1984)의 연구 모습]]
 
동양음악사학은 동양음악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동양음악사는 [[중국음악]]사학, [[일본음악]]사학, [[인도음악]]사학, [[아랍음악]]사학, [[자바음악]]사학 등으로 나뉘어질 수 있다.
 
[[File파일:Confucius Tang Dynasty.jpg|thumb|right|200px|동양의 가장 오래된 음악사학자인 공자]]
 
 
=== 중국음악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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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음악사학===
 
== [[한국음악사학]] ==
[[File파일:향비파와 당비파.png|thumb|조선시대『악학궤범』 향부악기도설에 나오는 향비파와 당비파]]
=== 개요 ===
근대적 [[인문학]]으로서의 한국음악사학 연구는 [[한국음악]]을 연구하는 한국국악학회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이혜구]](李惠求)는 1940년대 <양금신보의 사조(梁琴新譜 四調)>를 발표한 이래 많은 논문을 내었고 논문집 <한국음악연구>와 <한국음악서설>, <한국음악논총>을 내었다. [[장사훈]](張師勛)은 <보허자고(步虛子考)>를 비롯하여 많은 논문을 내었고 논문집 <국악논고>·<한국전통음악의 연구>·<한국악기대관>·<국악총론>·<한국음악사>·<전통무용의 연구>를 내었다. 그 밖에도 [[함화진]](咸和鎭)의 <조선음악통론>, [[성경린]](成慶麟)의 <조선음악독본>·<조선의 아악>·<국악감상>·<한국음악논고>·<한국의 무용>, 김기수(金琪洙)의 <국악입문>, 박헌봉(朴憲鳳)의 <창악대강> 등의 저서가 있다. 1959년에는, 비록 [[인문학]]인 한국[[음악사학]]이 엄연히 다른 [[음악]] [[연주]]와 [[작곡]]을 담당하는 영역과 공존하는 형태이지만,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 국악과 이론전공이 신설되어 한국[[음악사학]] 연구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으나 [[인문학]]의 성격은 퇴화되었다. 한편 국립국악원이 주축이 되어 인출된 것으로 양악 5선보에 옮긴 <한국음악>이 제14집까지 나왔고 재래의 율자보(律字譜)에 의한 <한국음악선집>도 제5집까지 나왔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에서 간행한 영인본(影印本) <속악원보>와 <대악후보>가 있고 양악 5선보에 채보한 이재숙(李在淑)의 <가야금산조>가 있다. 지금까지 활발한 연구활동을 한 사람으로는 권오성·한만영·이재숙·김정자·이성천·이병원·송방송·이보형·김길운·권도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