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사학: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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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시민계층이 점차 성장하는 와중에 나타난 [[계몽주의]]는 국가별로 역사에 관한 문헌이 조직적으로 관리하도록 하였고, 학문의 대중화를 이루어냈으며, 특히 음악에서는 [[고전주의 음악사]]와 같은 국제적으로 통일된 음악양식을 이끌어냈고, [[공공음악회]]와 [[출판문화]]의 발전은 음악에 대한 관심을 더욱 증대시켰다. 이러한 [[계몽주의]]의 발전과 시민들의 음악, 나아가 과거 음악에 대한 관심은 근대적 [[인문학]]으로서의 [[음악사학]] 발전의 단초가 되었고 공식적인 음악역사의 기록은 가장 보편적인 영역을 포괄하는 역사적 접근방식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어 역사기록의 필수 요소인 주제 영역의 정의, 자료의 비판적인 검토, 연역적 해설, 시대구분, 변화와 인과관계, 그리고 전기를 포함시키게 되었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음악사학자는 독일의 [[포르켈]], 영국의 [[찰스 버니]], [[존 호킨스]]등이 있다. 특히 [[포르켈]]은 18세기 [[괴팅겐 대학교]]에서 근대적 의미의 [[음악사학]]을 처음으로 교수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19세기에는 [[독일]]의 국력상승과 [[독일]] 중심의 학문 발전, 일반 [[역사학]]과 [[역사주의]]의 발전으로 인해 [[음악사학]]도 독일을 중심으로 비약적 발전을 하였다. 1861년 [[한슬리크]]가 [[빈 대학교]] 인문대학 음악사학과 정교수직을 부여받았으며 이후 [[베를린대학교베를린 훔볼트 대학교|베를린 대학교]], [[프라하대학교프라하 카렐 대학교|프라하 대학교]], [[스트라스부르대학교스트라스부르 대학교]] 등 전 유럽으로 확장되었다. 1868년 독일음악사학회가 창립되었고 1927년 국제음악사학회가 창설되었다.
 
[[파일:Carl Dahlhaus.jpg|right|170px|섬네일|20세기 가장 뛰어난 음악사학자 중 하나인 독일의 칼 달하우스(1928-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