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순 (여성운동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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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안부 생활 ===
김학순의 증언에 따르면 세 사람을 태운 기차는 평양을 떠나 신의주를 거쳐 [[산해관]]을 지나 [[베이징]](북경)으로 갔다. 하지만 베이징에서 양아버지는 일본군에 체포되고 김학순과 양언니는 군인들에게 끌려갔다. 김학순은 그날 일본군 장교가 자신을 [[강간]]했다고 증언했다. 다음날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의 언니도 일본군에게 강간을 당했고, 조선말을 하는 여성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빨간 벽돌집에서 김학순을 비롯한 5명의 조선 여성들은 [[위안부]] 생활을 하게 됐다. 김학순의 증언에 따르면 일본군은 보통 오후에 몰려들었고, 많은 날에는 하루에도 7~8명의 군인을 상대해야 한다고 했다.
2달정도 철벽진에 머무른뒤 그들은 일본군에 의해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군인의 수는 줄어들었지만 술을 마시고 오는 군인들이 많아 사는게 더 비참했다고 김학순은 증언했다. 김학순은 양언니(에미코)와 함께 호시탐탐 탈출 기회를 살폈다. 그러던 중 어찌된 일인지 40살 정도 되어 보이는 조선인 남자가 김학순의 방을 찾았다. 김학순은 그에게 사정을 하여 결국 위안소를 탈출할 수 있었다. 베이징에서 일본군에 끌려간지 4달만에 빠져나온 것이다. 이후 김학순은 탈출을 도운 평양 출신의 조선인 상인의 사실상 부인이 되어 딸과 아들을 낳고, 한동안 [[상하이]]의 프랑스 조계지에서 생활했다.
 
=== 광복 이후 ===
4개월 뒤 한 조선인 상인의 도움으로 위안소를 탈출했다. [[한국전쟁]] 때 남편을 잃고 마지막 의지의 대상이던 아들마저 초등학교 4학년 때 익사하자, 서울 종로구의 한 판잣집에 세들어 살며 온갖 궂은 일을 다했다. [[1990년]] 6월 일본이 '일본군은 군대위안부 문제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발표하자 이에 격분해 폭로할 것을 결심했고, 1년 후에 실행에 옮겼다. [[1991년]] [[8월 14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사무실에서 대한민국 내 거주자로는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의 실상을 실명으로 증언했다.<ref name="동아일보20081216">[http://news.donga.com/3/all/20081216/8671820/1 책갈피 속의 오늘 1997년 일본군위안부 김학순 할머니 별세] [[동아일보]] 2008-12-16</ref> <ref name="동아일보20140814">[http://news.donga.com/Main/3/all/20140814/65733914/1 14일 위안부 기림일… 세계 156만명 지지 서명] [[동아일보]] 2014-08-14</ref> [[1991년]] [[12월 6일]] 도쿄지방재판소에 이 문제를 제소,<ref name="동아일보20081216"/> 1994년 6월 6일 제9차 재판 진행 중 위안부 사실에 대해 법정에서 증언했다. [[1993년]] 한국정신대문제연구회가 당시 일본 총리였던 [[미야자와 기이치]]의 방한을 앞두고 발간한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이라는 증언집에서 참담했던 자신의 위안부 생활을 구체적으로 공개해 대한민국 내외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주 수요일에 열리는 항의 집회에 빠짐없이 참가하고 일본 의회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등 위안부 동원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죄와 보상을 촉구했으며, 정신대 문제를 국제사회 문제로 확대하는 데 여생을 바쳤다. 1995년 위안부 할머니들의 애환을 다룬 연극 '노을에 와서 노을에 가다'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고, [[1997년]] [[12월 8일]] 평생 모은 약 2천만 원을 '나보다 더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을 위해 써달라'며 자신이 다니던 서울 동대문감리교회에 기증했다. 1997년 [[12월 16일]] 서울 동대문 [[이화여대 병원|이화여대 부속병원]]에서 폐질환으로 세상을 떠났다.<ref name="동아일보20081216"/> <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121700289130008&edtNo=7&printCount=1&publishDate=1997-12-17&officeId=00028&pageNo=30&printNo=3067&publishType=00010 한겨레신문, 위안부 최초 증언 김학순씨 별세]</ref> 충남 천안시 [[국립망향의동산]]에 묻혔다.
 
== 일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