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기: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Hynoyo95 (토론 | 기여)
편집 요약 없음
태그: m 모바일 웹
Hynoyo95 (토론 | 기여)
편집 요약 없음
태그: m 모바일 웹
1번째 줄:
{{다른 뜻|박종기 (1948년)||전 태백시장}}
'''박종기'''(朴鍾基, 1880~1947)는 [[조선 고종]]-[[일제 강점기]] 때의 [[대금 산조]] 명인이다. [[전라남도]] [[진도군|진도]](珍島)에서 출생하였다. [[대금]] 하면 정악(正樂)에 [[김계선]](金桂善), 민속악(民俗樂)에 박종기로 쌍벽을 이루었다. 일제 때 삼남지방(三南地方)에서는 '박젓대' 하면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이름을 날렸다. 어려서부터 [[젓대]]의 학습에 열심이었고 뛰어난 재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그는 재래의 심방곡(心房曲)·봉장취 같은 곡에도 능하였을 뿐 아니라 [[판소리]]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서 [[산조]]에 판소리 기법을 많이 활용하여 대금산조의 체계를 세운 공이 크다. 부모의 중병에 살을 도려 약에 쓴 효행이며 여러 가지 일화를 남긴 기인(奇人)이었다. [[조선성악연구회]](朝鮮聲樂硏究會)에서 기악부문의 연주와 교육에 활약하였다. 그의 제자로 [[한주환]](韓周煥)이 있다. 왜정 때 취입한 산조 [[음반]]과 많은 기악반주 음반이 남아 있다.
 
{{글로벌세계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