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관 (전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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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를 가지고 부리는 기예로 낭(郞)이 돼 문제를 섬겼고, 공이 있어 중랑장으로 승진했다. 근신하여 문제의 신뢰를 받았다. 황태자(후의 경제)가 문제의 좌우 사람들을 불러 연회를 열자 칭탈하고 가지 않았다. 문제는 죽으면서 태자에게 위관을 잘 대우하도록 부탁했다.<ref name="h46"/>
 
낭관 중에 죄를 지은 사람이 있으면 그 죄를 가려주고, 다른 중랑장들과 공을 다투지 않고 항상 양보했다. 경제가 이를 보고 충성스럽고 다른 마음이 없다고 여겨 하간나라(당시 하간왕은 [[유덕 (하간헌왕)|하간헌왕]])의 태부로 삼았다.<ref name="h46">[[반고 (후한)|반고]], 《[[한서]]》 권46 만석위직주장전제16</ref><ref name="h19l">위와 같음, 권19 하 백관공경표제7 하</ref> 경제 3년([[기원전 154년|기원전 154]]) [[오초칠국의 난]]이 일어나자 조서를 받아 장수가 돼 하간나라의 병을 거느리고 오나라·초나라와 싸워 공을 세웠고, 중위가[[집금오|중위]]가 됐다.<ref name="h46"/><ref name="h19l"/> 경제 6년(기원전 151년)에 군공으로 건릉후에 봉해졌다.<ref name="h46"/>
 
경제 7년([[기원전 150년|기원전 150]]), 경제가 [[유영 (임강민왕)|율태자]]를 폐하고 외척 율경(栗卿) 일족을 주살하려는데, 위관이 장자라 이를 참아보지 못할 것 같아 집으로 돌려보내고 제남태수며 혹리인 [[질도]]를 중위로 삼아<ref name="h19l"/> 율씨들을 사로잡게 했다.<ref name="h46"/> 일이 끝나고 교동왕 [[전한 무제|유철]]을 새 태자로 세우면서 위관은 태자태부가 됐다.<ref name="h46"/> 경제 중3년(기원전 147년) 승상으로 승진한 도후 [[유사 (승상)|유사]]를 대신해 어사대부가 됐고, 경제 후원년(기원전 143년) 면직된 유사를 대신해 승상이 됐다.<ref name="h46"/><ref name="h19l"/> 궁에 들어왔을 때부터 승상이 되고 나서도 새로운 것을 만들거나 있던 것을 폐하거나 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으나, 문제는 위관이 돈후해 어린 황제의 재상이 될 만하다고 여기고 총애하며 많은 상을 내렸다.<ref name="h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