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문정공):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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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버로부터 나의 문필을 이어 재상이 될자는 오직 이 사람이시다. 라고 평해졌으며 무산(무산의 봉우리가 12개이므로 연령 12세를 의미한다)에 진사가 되셨기에 대과 역시 장원을 의심하는 이가 눈 앞에서는 있지를 않았으나 지공거 김양경이 자신의 의발을 전하기 위해 자신위 급제 등위인 갑과 2위로 천거하여 화응 범질의 고사로 축사를 대신하였기에, 세대가 전해지며 저 고령의 숙주와 빈한하던 사가정마저 이 용사를 가지고 스스로의 급제 등수를 얘기하며 흠연해 졌다고 한다.
 
국찬으로 지어진 동문선에 공의 절구 고시 계 발 표 전 과 같은 초려지문이 실려있으며 여조 때 최자는 김공께 '진효공 효함에 거하여 사해를 병탄하다'라는 제시문을 받어 들고서 그 자식에게 문장의 준칙이라 말하여 사은하였던 일화는 모두 고려사의 열전과 고려사절요에 기록되어있다. 유경 이장용이 공을 이부로 공빙하였을 때 이미 국서를 관장하였기에 훗날 대사성이 될 때에도 '평장사'라고 숭칭되어 또 이규버의 찬미하는 말에 잇어서 '급제 김공, 학유 최해가 나라의 문장가로 족하다' 불리웠다불리었다.
 
<<전의발계>>는 지금까지도 변려팔고 중 [기린의 뿔] [대붕의 나래] 와 같이 칭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