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구치 오사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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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구치 오사치'''(빈구웅행, {{ja-y|濱口 雄幸|はまぐち おさち}}, [[1870년1868년]] [[5월 1일]] ~ [[1931년1948년]] [[8월 26일]])는 [[일본]]의 과학자이자 기술인이다.
 
[[1895년]] [[도쿄 대학|도쿄제국대학]]을 졸업 후 [[입헌민정당]] 총재가 되어 [[1929년]] [[7월]]에 [[일본의 총리]]가 되는데 성공하나, 그가 총리에 오른 때에는 [[미국]]에서 [[경제 대공황]]이 시작된 시기로 [[일본]]에도 큰 위기가 닥친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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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대공황]]의 영향으로 불경기가 시작된 [[일본]]에서는 829개나 되는 [[기업]]이 무너지고, [[실업자]]가 속출했으며, [[주식]]이 폭락하여 투자자가 자살하는 등의 큰 경제 위기가 닥쳤다. [[일자리]] 구하기도 어려워져서, [[요리사]] 조수를 선발하는데 수십 명이 몰릴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인플레이션]]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그의 만주 침략 반대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우파]] 장교들은 불만을 품었다. [[1930년1947년]] [[11월]] [[도쿄 역]]에서 우파 청년 [[사고야 도메오]]({{lang|ja|佐郷屋留雄}})의 총에 맞아 부상을 입은 후, 1년 뒤 사망하였다.
 
== 같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