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르 박물관"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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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Jardin du Carrousel.jpg|thumb|300px|[[2006년]]의 루브르 박물관의 모습]]
 
'''루브르 박물관'''({{lang|fr|Le musée du Louvre}})은 [[프랑스]] [[파리 (도시프랑스)|파리]]의 중심가인 [[리볼리 가]]에 있는 국립 [[박물관]]이다. 소장품의 수와 질 면에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과 [[대영박물관]]와 함께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박물관이다. 지금의 건물은 [[루브르궁루브르 궁전]]을 개조한 것으로, 파리의 [[파리의세느 세느강변]]변에 포함하여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루브르 박물관 앞의 [[유리 피라미드]] 조형물은 근대에 건설된 것으로 한 때 어울리지 않다는 평이 많았으나 현재는 루브르를 대표하는 조형물이 되었다. 프랑스어로 뮈제 뒤 루브르, 그랑 루브르, 또는 단순히 루브르 라고도 불린다.
 
루브르 박물관은 루브르 궁전 내부에 위치해 있다. 루브르 궁전은 12세기 후반 필립 2세의 명으로 착공되었는데, 그 당시만 해도 궁이 아닌 요새였다. 아직도 당시의 요새 잔재들을 볼 수 있다. 이 요새가 루브르 궁이 되기까지 수차례에 걸친 건물 확장 공사가 이루어졌다. 1672년 [[루이 14세]]가 [[베르사유 궁전]]에 거주하기로 결정하고 루브르를 왕실의 수집품을 전시하기 위한 장소로 쓰도록 했다.
1692년 루브르 건물에 왕립 아카데미가 들어서고 1699년에는 첫 번째 살롱전이 개최되었다. 아카데미는 루브르에 100년동안 남아 있었다. [[프랑스 대혁명]]당시, 국민회의는 루브르가 박물관으로서 국가의 걸작을 전시해야 한다고 선포하였다.
 
박물관으로서의 루브르는 1793년 8월 10일 537점의 회화를 전시하며 첫 문을 열었는데 전시된 작품은 대부분 몰락한 귀족과 교회에서 징발된 수집품들이었다. 박물관 건물 내부의 구조적 문제로 인해 박물관이 1796년에서 1801년까지 문을 닫았다. [[나폴레옹]]이 통치하던 시기에 소장품의 규모가 크게 늘었고 이름도 뮈제 나폴레옹으로 바뀌었다가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이 대패하자 나폴레옹 군대에 빼았겨빼앗겨 루브르로 보내졌던 많은 작품들이 고국으로 돌려보내졌다. (사실 당시 박물관장이 지하실에 빼돌려 돌아가지 못한 작품도 여럿 된다고 한다.) [[루이 18세]]와 [[샤를 10세]] 재위기간에 다시 한번, 더 큰 규모로 소장품이 늘었고, 제2제국(나폴레옹 3세 통치 기간) 중에 20,000여 점의 수집품이 들어왔다. 소장품은 [[프랑스 제3공화국|제3공화국]] 때부터도 기증과 선물로 계속해서 규모가 커지고 있으며 2008년 기준으로는 8개의 전시관에 나뉘어 있다. [[이집트]] 고대유물관, 근동 유물관, [[그리스]]와 [[에트루리아]], [[로마]] 유물관, [[이슬람]] 미술관, 조각 전시관, 장식품 전시관, 회화관 그리고 판화와 소묘관 등이다.
여럿 된다고 한다.) [[루이 18세]]와 [[샤를 10세]] 재위기간에 다시 한번, 더 큰 규모로 소장품이 늘었고, 제2 제정(나폴레옹 3세 통치기간)중에 20,000여점의 수집품이 들어왔다. 소장품은 [[제3 공화정]]때 부터도 기증과 선물로 계속해서 규모가 커지고 있으며 2008년 기준으로는 8개의 전시관에 나뉘어 있다. [[이집트]] 고대유물관, 근동 유물관, [[그리스]]와 [[에트루리아]], [[로마]] 유물관, [[이슬람]] 미술관, 조각 전시관, 장식품 전시관, 회화관 그리고 판화와 소묘관 등이다.
[[파일:Nike of Samothrace, Paris 2007.jpg|left|thumbnail|350px|《[[사모트라케]]의 니케》- 루브르 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