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문간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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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화 원전 ==
요르문간드가 등장하는 주요 문헌은 《[[신 에다]]》(Prose Edda), [[스칼드]] 시 〈[[후의 송가]]〉(''Húsdrápa''), 그리고 《[[고 에다]]》(Poetic Edda)의 〈[[히미르의휘미르의 서사시]]〉(''Hymiskviða'') 및 〈[[무녀의 예언]]〉(''Völuspá'')이 있다. 그 외 중요도가 떨어지는 다른 스칼드 시에도 요르문간드의 [[케닝]](kennings)이 등장한다. 예컨대 〈[[토르의 송가]]〉(''Þórsdrápa'')에는 [[로키]]를 ‘바닷속 줄기의 아버지’(faðir lögseims)라는 케닝으로 부르고 있다. 또한 고대의 [[회화석비]]에도 토르가 요르문간드를 낚아올린 신화를 묘사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 관련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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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르의 낚시 여행 ===
[[파일:NKS 1867 4to, 93v, Thor and Jörmungandr.jpg|thumb|right|18세기 [[아이슬란드]]의 필사본에 등장한 토르의 낚시. 망치를 들어올린 토르와 겁에 질려 쭈그리고 있는 히미르가휘미르가 보인다.]]
그 다음번에 토르와 요르문간드가 만난 것은 토르가 [[티르]]의 아버지 [[히미르휘미르]]와 함께 낚시를 나갔을 때 일이다. 히미르가휘미르가 낚시미끼를 제공하기를 거부하자 토르는 히미르의휘미르의 황소 중 가장 큰 놈의 대가리를 잡아뜯어 미끼로 썼다.<ref name="ProseEdda54">Sturluson, ''Gylfaginning'' ch. xlviii, 2008:54-56.</ref> 둘은 히미르가휘미르가 광어를 잡으러 자주 나가는 낚시 목으로 가서 고래를 두 마리 낚아올렸다. 그러나 토르는 싫다고 하는 히미르에게휘미르에게 계속 먼 바다로 나갈 것을 요구했다.
 
토르는 튼튼한 줄과 거대한 갈고리를 준비해 소대가리를 미끼로 걸었다. 요르문간드가 미끼를 물자 토르는 거대한 뱀을 물 밖으로 끌어냈다. 요르문간드와 토르가 서로 대면하자 요르문간드는 아가리에서 [[에이트르|독]]과 피를 질질 흘렸다.<ref name="ProseEdda54"/> 토르가 자신의 망치를 들어 뱀을 죽이려는 순간, 공포로 하얗게 질린 히미르가휘미르가 낚싯줄을 끊어 버렸다. 거대한 뱀은 파도 사이로 가라앉아 사라졌다.<ref name="ProseEdda54"/>
 
이 토르의 요르문간드 낚시는 노르만 예술에 상당히 유명한 [[모티프]]가 되었다. [[알투나 룬 석비]], [[아르드레 회화석비]], [[회르둠 석]], [[고스포르트 십자가]] 등 네 개의 [[회화석비]]에서 이 신화를 묘사한 그림이 발견되었다.<ref name="Sor123">Sørensen 2002:122-123.</ref> 고스포르트의 두 번째 십자가의 일부분으로 보이는 석판에도 황소 대가리를 이용한 낚시 장면이 새겨져 있다.<ref>Fee & Leeming 2001:36.</ref> 이 중에서도 아르드레 8번석이 가장 흥미로운데, 황소가 서 있는 집 안으롤 들어가는 남자가 새겨져 있고 다음 장면에서는 고기잡이 작살을 준비하는 남자 두 명이 새겨져 있다.<ref name="Sørensen">Sørensen 2002:130.</ref> 이 돌에 새겨진 그림은 8세기<ref name="Sor123"/> 또는 9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이다. 만약 이 그림이 토르의 요르문간드 낚시 신화를 묘사한 것이 확실하다면, 스노리의 《신 에다》가 편찬된 1220년경까지 약 500 여년 동안 신화의 줄거리가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된다.<ref name="Sørens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