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바야카와 다카카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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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분 13년([[1543년]])에 [[고바야카와 씨|다케하라(竹原) 고바야카와가]]의 당주 [[고바야카와 오키카게]]가 후사를 남기지 않고 사망했기 때문에 그의 [[입양|양자]]가 되었다. 모토나리의 조카([[모리 오키모토]]의 딸)가 오키카게의 아내였던 인연도 있어 다카카게가 양자로 들어가는 과정은 평화적으로 진행되었으며, 다카카게는 다케하라 고바야카와 가문의 당주가 되었다. 덴분16년([[1547년]]) [[오우치 요시타카]]가 [[빈고노쿠니|빈고]] [[간나베 성]]을 공략할 때 종군해 첫 출진[初陣]을 치렀다. 이때 다카카게는 간나베 성의 지성인 류오산 요새를 고바야카와 군 단독으로 떨어뜨리는 공적을 세워 요시타카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고바야카와 씨의 본가 [[고바야카와 씨|누타(沼田) 고바아캬와가]]의 당주 [[고바야카와 시게히라]]는 어린데다가 병약했기 때문에, 요시타카는 [[아마고 씨]]의 침공이 시작되면 막을 수 없다며 걱정하고 있었다. 결국 덴분 19년([[1550년]]) 요시타카는 모토나리와 협력해 시게히라를 아마고와 내통한다는 죄를 씌워 구금했다.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제적으로 은거・출가하도록 몰아붙이는 한편 [[다사카 요시아키]] 등 누타 고바야카와가의 중신들을 정리했다. 그 후 다카카게는 시게히라의 누나를 아내로 맞아 사실상 누타 고바야카와 씨를 지배하에 두고 그 가독을 이었다. 이렇게 해서 다카카게는 누타・다케하라 양쪽 고바야카와 가문을 합체・통일한 모양으로 고바야카와가의 당주가 되었다.
 
=== 모리 모토나리 시대 ===